[무플방지]북한 연락사무소 폭파하자 "탈북자들 신변 주의합시다"

by박지혜 기자
2020.06.21 00:03:25

대북전단, 북한 위협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
"우리가 남북관계 악화 주범?"...탈북민단체 반발
''삐라 폭탄'' 던지는 자유, 막아야 하는 이유 ''팽팽''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탈북민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지난 16일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글이다.

주 기자는 “오늘 화끈한 쇼를 보니 한국 잠복조들에도 임무가 하달됐을 듯한 느낌”이라며 “암살이 벌어져도 이 정부에선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죽는 사람만 불쌍할 듯”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1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중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깨깨 받아내야 한다는 판단과 그에 따라 세운 보복 계획들은 대적 부문 사업의 일환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국론으로 확고히 굳어졌다”는 부분을 되새겼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지난 15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를 맹비난하는 기사와 영상물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박 대표의 얼굴에는 총기로 조준한 듯한 십자선 과녁이 그려 넣어져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삐라’라 불리는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와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연일 대남 강경 발언을 내놨다.

북한은 예고한 대로 신속하게 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이후 대북전단에 대한 공방이 펼쳐졌다.



주 기자는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 하루 전 “북한도 탈북자 탓, 남쪽도 탈북자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북한의 잇단 위협을 촉발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로 대북전단이 지목되고, 정부가 엄정 대응 기조를 밝힌 데 대한 비판이다.

그는 “삐라 사건 없었으면 북한과 관계가 여전히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어차피 북한은 올 상반기 전쟁 위기까지 끌고 간다는 시나리오대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또 한 번 제일 힘없는 탈북자들이 남과 북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지난 1년 반 사이 뭘 했는지 돌아보라. 핫라인은 자랑 한 번 하느라 깔았나. 그렇게 삐라가 나쁜 거면 미리 막던가”라고 덧붙였다.

탈북민 단체 큰샘 관계자들이 지난달 24일 북한을 향해 ‘페트병 쌀’을 바다에 띄워 보내고 있다 (사진=박정오 씨 페이스북)
대북전단을 보낸 탈북민 단체에서도 반발이 일어났다.

탈북민 단체 ‘큰샘’을 운영하는 박정오 씨는 최근 SNS에 ‘통일부 차관,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현장 방문 계획’이라는 문서를 공개하며 “통일부 차관이 대북전단과 쌀 보내기를 차단하기 위해 온갖 방해 책동을 다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박 씨는 “지역사회 남남갈등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재앙(문재인 대통령과 재앙의 합성어) 정부 아닌가?”라며 “마치 우리가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인 양”이라고 했다.

큰샘은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사흘째인 지난 18일에도 북한에 보낼 쌀을 포장했다. 이 단체가 쌀을 보낸 건 지난 2016년부터 이번이 108번째다. 지난 8일에도 쌀 페트병을 인천 석모도 바다에 띄워 보내려고 했지만 주민과 경찰이 제지로 무산됐다.

단체는 오는 21일 행사 강행 의사를 밝혀왔으나 19일 잠정 보류를 결정했다.

박 씨는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과 김여정의 공갈, 협박으로 대한민국 국민들께서 불안해함으로 그를 감수해 이번 북한 인민들에게 쌀 보내기 행사를 잠정 보류하기로 한다”며 “북한 독재 정권의 피해자인 쌀과 희망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큰샘 외에도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민 단체가 6.25 전쟁 70주년을 맞는 오는 25일 대북전단 100만 장을 또 날려 보내겠다고 밝히는 등 대북행사 아직 철회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가운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북전단이 경기도 의정부의 한 가정집에 떨어져 지붕이 파손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대북전단을 ‘살인 부메랑’이라 칭했다.

이 지사는 대북전단 낙하로 인해 자칫 인명피해 가능성도 있다며 해당 전단을 살포한 단체에 강경한 대응을 선언했다.

여기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탈북자 때려잡기’라고 비판하면서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하 의원은 이 지사가 ‘정치권 선동’이라고 받아치자, “공권력을 동원해 탈북민 단체를 탄압했다”고 응수했다. 그는 “이 지사가 대화와 설득조차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힘없는 탈북자를 희생양 삼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8일 공개한 의정부시 한 가정집에 떨어진 대북전단물(사진=이 지사 페이스북)
여론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전단을 살포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 협력에 장애가 되니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특히 전단 살포를 국가 차원에서 제재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정부가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했고, 막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29%로 조사됐다.

통일부는 전단 살포 행위가 종전과 달리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탈북민 단체 2곳에 대해 지난 11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전단 살포를 단속해선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로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된다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 있다는 2016년 대법원 판단을 언급했다. 또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 전단을 통해 날아간 물품에 대해 방역이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북측의 우려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도 ‘삐라 폭탄’을 언급, 대규모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다.

북한이 최근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리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공언하면서 일상 속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