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대우그룹, 경제관료 손에 기획해체..30조 손실"

by정태선 기자
2014.08.22 00:04:10

'김일성, 김정일'과의 20여 차례 만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012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2년 대우인회 정기총회 및 대우창립 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하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15년만에 처음 입을 열었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가 경제 관료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는 ‘기획 해체론’을 주장했다.

대화록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무리한 확장 투자로 인한 자체 부실로 쓰러진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대중 정부 경제팀과의 갈등 때문에 억울하게 해체됐고, 그 결과 한국 경제에 매우 큰 손실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세계경영’이란 기치를 걸고 지나친 확장 투자로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자동차 등의 부실이 감당할 수 없이 커졌고, 결국 대우그룹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당시 경제관료들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대화록에서 김 전 회장은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며 “갑자기 수출금융이 막혀 벌어진 일들을 우리가 잘못한 걸로 몰아붙이는 건 도대체 말이 안되고, 의도가 있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출금융이 막혀서 16조원이 갑자기 필요해졌고, 금융권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한 구조조정을 하면서 3조원의 대출을 회수해 갔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대우의 잘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외부 여건 때문에 할 수 없이 19조원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이 왜 기업 부실의 증거냐고 반문했다.

대우자동차 처리와 관련, 그는 “정부가 대우자동차를 잘못 처리해서 한국 경제가 손해 본 금액만 210억달러(약 30조원)가 넘는다”며 “한국이 금융위기 때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돈만큼이나 많은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우자동차를 실패한 투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우 해체에 따르는 비용은 한국 경제가 고스란히 부담했고 투자 성과는 지엠이 다 가져갔다”며 “대우 해체는 실패한 정책이고 GM의 성공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 전 회장은 또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 때문에 대우와 삼성 간의 자동차 빅딜을 적극적으로 밀었지만 경제관료들은 빅딜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우그룹을 청산가치로 실사해 30조원이나 자산가치를 낮춰서 ‘부실기업’으로 낙인찍고 경영권 박탈과 워크아웃을 합리화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자신이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대북특사로 일하면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10년가량 북한을 오가면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 세 명만 20번 이상 만났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제 여건이 그렇게 다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건의한 대로 했으면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한 번 (북한에) 가고, 김 주석이 (한 번 남한에) 오고…. (합의서도) 유리한 조건이었고 그때가 한국에는 찬스였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15년 전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김 전 회장의 비공개 증언을 담은 대화록은 26일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은 신 교수가 4년간 서울과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김 전 회장을 20여차례 만나 한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했다. 책 제목은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이 태동하던 1989년 출간돼 밀리언셀러가 된 김 전 회장의 자전적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따온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