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정치적 무력함의 댓가

by이정훈 기자
2011.11.24 10:15:00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혹시나` 했지만, 결국 `역시나` 였다. 미국 의회가 재정적자 감축 합의 실패로 미국 경제를 안갯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난 8월 정부 채무한도 증액 문제로 전세계를 긴장시킨지 불과 석 달만에 또 한 번 사고를 친 셈이다.

물론 이번에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즉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던 일과 같은 쇼크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서서히 회복 기대를 높여가고 있었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당부분 의견 접근을 이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합의 불발에 따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적었던 상황에서 조세제도 개혁이 내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한 양당이 기선 제압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버티기를 고수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합의 실패를 발표한지 불과 하루가 지났건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벌써부터 2013년 1월에 시작될 자동적인 재정지출 삭감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급여소득세 감면 연장이라는 카드로 곧바로 공화당에 공세를 가하고 있고, 공화당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어떻게든 재정지출 삭감을 따내려 하고 있으니 이런 해석이 무리는 아닐 법하다.



마침 이런 날 한국에서도 최루탄이 날리는 극한 상황에서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기습 처리했다. 미국과의 FTA 자체가 우리의 흥망을 좌우할 순 없다. FTA로 인한 문제를 어떻게 미리 대비할지, FTA에 따른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할지가 우리에게 필요한 고민일텐데,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그런 진지함이 생략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아쉽다.

`대화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미국 의회도, `행동하지만 대화가 없는` 우리 국회도 국민들에게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환멸만 학습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유로존을 봐도 마찬가지다. 기존 무력한 정부를 대신해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가 정치적 리더십을 가진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힘겹게나마 시장 신뢰를 얻어가고 있는 반면 단순히 진보진영에서 보수진영으로 정권이 바뀐 뒤 위기가 더 커져가는 스페인의 경우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나라들의 정치권이 보여준 헛발질의 볼모는 전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다. 정권 창출이라는 목표 아래 국민도, 나라 경제도 안중에 없는 듯한 현 상황은 정치적 무능함과 무책임함의 댓가가 얼마나 큰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그 화살은 정치권 스스로에게 향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를 뼈저리게 확인한 바 있다. `아마추어`라고 손가락질한 인물에게 시장직을 내줬고, `일개 대학교수`를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만든 이들은 바로 정치인들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