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리포트)미국 항공사는 줄줄이 망하는데...

by강종구 기자
2006.02.21 07:00:00

국내항공사, 유류할증료 효과 `톡톡`
유가급등 불구 `실질유류비` 부담 그대로..인건비 부담도 크게 낮아
영업환경 경쟁적으로 바뀌면 신용에 악영향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2005년에 AP통신의 10대 뉴스 1위는 `고유가`였다. 그리고 4위는 `고유가로 인한 미국 항공업계의 부진`이 올랐다. 그만큼 유가는 항공사의 수익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유가는 국내 항공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평균적으로 국내 항공사(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매출 대비 유류비는 15% 내외. 유가가 2003년부터 급등하는 바람에 2004년엔 유류비 비중이 20%를 넘었고 지난해엔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지난해 11월 한국신용평가는 `항공산업-2005년 유가상승이 미치는 영향`이란 스페셜리포트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때 대한항공은 약 38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약 160억원의 연료비 부담이 증가한다. 유가상승에 대한 적응은 양사 모두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고유가 적응력 향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안정될 경우 2006년이후 실적 향상이 예상되지만 2006년에도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재앙이 올 수도 있다. ☞(관련기사 참조)"고유가 지속땐 항공사에 `재앙` 올수도"

당시 한신평은 급격한 유료비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항공사들이 적자를 면한 이유중 하나로 `유류할증료`를 들었다. 연료비 부담의 일부를 고객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적자결산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유가가 더 올라서 운임과 유류할증료가 더 인상되면 수요가 감소하고, 혹시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도 오는 날엔 항공사 피해가 심각할 것이란게 한신평의 경고였다. 유가흐름이 항공사의 신용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20일. 이번에는 한국신용정보가 `고유가와 항공사의 수익구조`라는 제목의 스페셜리포트를 냈는데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유가가 더 오를 경우의 시나리오보다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덜 경쟁적인 산업구조로 인해 `유류할증료의 혜택이 극대화되는` 영업환경을 지녔음에 주목했다. 역으로 해석하자면 유리한 영업환경이 불리하게 바뀌면, 다시 말해 보다 경쟁적인 환경이 되면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미국이나 일본 등의 항공사와 비교할 때 고유가의 피해에서 한발 비껴 나 있다. 유가가 오르면 항공료를 올려 받는 `유류할증료`때문이다.

유류할증료(Fuel Surcharge)는 지난 2003년 4월 건설교통부가 고유가에 따른 국적항공사의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항공화물에 한해 도입했다. 그러다 2004년 10월 할증료가 인상됐고 지난해 7월부터는 인가제 노선의 항공여객에도 확대적용했다. 또 유가 급등이 속되자 국제선 여객의 유류할증료 부과대상을 확대함과 동시에 추가 인상도 이루어졌다.



유류할증제 도입은 거의 전세계적인 현상. 또 외국 항공사라고 하더라도 신청이나 인가를 통해 출발국의 정부가 제시하는 유류할증료를 적용받을 수 있다. 국내를 출발지로 하는 경우 국내사나 외국사가 모두 우리나라의 할증료제도 적용대상이란 얘기다.

여객운송의 경우 장거리를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1인당 52달러의 유류할증료를 부담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본은 2000엔, 중국은 14달러, 싱가포르는 30달러선이다. 미국과 독일은 각각 35달러와 17유로의 할증료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신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은 다른 나라 항공사들과 달리 영업환경상 유류할증료의 혜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경우 경쟁이 심해 오히려 가격할인을 해주는 판인데 반해 국내 항공사들은 경쟁이 약한 국제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최우석 한국신용정보 책임연구원은 "항공운송의 자유화 정도가 높은 미국 및 유럽에서 출발하는 노선에서는 가격할인 경쟁 등에 따라 유류할증료 제도의 시행에 따른 효과를 수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국내 항공사는 상대적으로 경쟁정도가 낮은 국제선의 비중이 높아 유류할증료 부과의 효과를 충분히 수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가의 대폭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내 항공사의 지난해 매출 대비 실질 유류비 부담은 2004년 수준으로 유지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추가적인 유가상승으로 실질 유료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지만 국제선 여객에 대한 유류할증료가 7월부터 부과되기 시작했고, 11월부터 인상된 요율이 적용된 점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에 따른 유류비 부담의 많은 부분은 상쇄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발표한 지난해 예상실적에 따르면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파악된다.

아시아나 항공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04년보다 나빠졌지만 이는 고유가 때문이 아니라 7~8월 조종사 노조 파업에 따른 영업차질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내 항공사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유류할증료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비결은 좁은 영토(?)와 낮은 자유화라는 진입장벽이다.



우선 영토가 좁다보니 항공운송매출의 약 90%가 국제선일 정도로 국내선 비중을 압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항공사의 국제선 매출 비중은 야 25%에 불과하고 일본 항공사는 55% 정도다. 미국은 영토가 넓고, 일본의 국토는 여러 섬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국내선 수요가 충분한 반면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협소해 국내선 수요가 많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선과 국제선의 가장 큰 영업환경상 차이는 바로 규제의 정도다. 국내선은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규제완화의 폭이 결정되지만 국제선은 당사국 간의 양자 협정에 따라 규제완화가 적용되는데, 당사국의 정치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일반적으로 자유화가 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말 현재 총 83개국과 항공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이중 항공운송 자유화가 이루어진 나라는 미국을 포함한 13개국이고, 나머지 70개국은 여전히 신고제가 아닌 인가제로 노선, 운수권, 운항횟수, 운임 등에서 규제를 받고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국내 항공사는 국제선 매출 비중이 높고 특히 항공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와의 운항비중이 크다"며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본 및 미국의 항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지난 78년 항공운송산업의 규제완화가 이루어진 이후 국내선의 경쟁이 매우 격화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취약한 상태. 2002년부터 지난해말까지 대형 여객항공사중 파산신청을 한 곳만 4개사(델타항공, 노스웨스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S 에어웨이즈)에 이른다. 반면 일본은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국내선이 JAL(Japan Air Lines)과 ANA(All Nippon Airways)의 과점체제로 굳어지면서 오히려 국제선보다 수익성이 더 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여객운송보다는 화물운송 비중이 높고, 인건비 부담이 훨씬 가벼운 것도 국내 항공사들의 잇점이다. 국내항공사의 항공운송매출 중에서 화물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대한항공이 2004년 기준 37%, 아시아나항공이 33%에 달한다. 일본은 JAL이 14%, ANA가 8%에 불과하고 미국 대형항공사의 경우에도 10% 미만이다.

전쟁 또는 테러가 터지거나 조류독감(AI)와 같은 질병이 확산되면 여객운송은 급감하게 마련. 그에 비해 화물운송은 그런 이벤트 리스크에 대한 노출정도가 낮다. 최 책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화물운송 수요는 여객수요에 비해 양호한 성장성을 보이고 있다"며 "화물운송의 매출비중이 높은 것은 사업다각화를 통한 매출안정화와 더불어 영업안정성 측면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매출대비 인건비 부담은 국내사가 15% 미만인 반면 일본 항공사는 25% 내외, 미국 항공사는 35%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 나라마다 임금이나 복리후생의 수준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항공사가 높은 인건비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 부담은 또 하나의 경쟁무기임에 틀림없다.

최 책임연구원은 "일본이나 미국 항공사와 다른 국내항공사의 영업환경은 국제선 비중이 높아 이벤트 리스크에 대한 노출정도가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신용도에 긍정적 측면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우리정부는 9.11테러에 따른 항공수요 위축시에 국내 항공사들에게 재정융자를 지원한 바 있는 등 재무적인 완충역할을 일부 해주고 있어 국내 항공사의 영업환경을 우호적으로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리한 영업환경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장기적으로 자유화 정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정부가 언제까지나 뒤를 바줄 수도 없다. 

최 책임은 "최근 항공협정이 양자간 협정에서 다자간 협정으로 바뀌는 등 전반적인 자유화 정도는 장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현재보다는 경쟁강도가 높아지는 쪽으로 영업환경이 바뀔 것이며 정부의 항공산업 정책변화에 따라 항공사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