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경록 기자
2005.10.27 08:30:00
[이데일리 김경록 칼럼니스트] "아마 후임 Fed 의장이 그린스펀의 비밀 공식이 있을 것이라고 그린스펀의 맨 위 서랍을 열어보고는 거기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심히 놀랄 것이다" 이는 블라인더(A.S. Blinder)와 라이스(R. Reis)교수가 8월 4일 '그린스펀 기준의 이해(Understanding the Greenspan Standard)'에서 쓴 말이다. 대가(maestro)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린스펀은 이제 내년 1월이면 떠난다. 20대의 나이에 거시경제를 가지고 컨설팅을 했으며, 예술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8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중앙은행 총재직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떠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린스펀을 뛰어난 이코노미스트, 데이터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하지만 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뛰어난 펀드 매니저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블라인더와 라이스 교수가 쓴 글을 참조하면서 펀드매니저로서의 그린스펀이 던지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해본다.
그린스펀은 어떤 주의(doctrine)에 구속되지 않을 만큼 매우 유연하다. 그는 자연 실업률 6%를 버렸으며 통화주의자인지 케인즈주의자인지 불명확하다. 그리고 어떤 이슈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린스펀의 기준은 상황에 적응하여 변하고 심지어 기회주의적인 정책의 면모를 보인다.
이처럼 어떤 주의나 이론적 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선택범위가 개방되어 있다. 그린스펀은 불확실성이 클수록 선택 범위 확대의 가치가 더욱 높다고 보고 있다. 경제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연히 통화정책도 그때그때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흥미 있는 시각이다. 프리드만을 비롯한 학자들은 경제가 불확실하므로 괜히 이런저런 정책을 써봐야 뒷북만 치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 맡겨 놓자는 주장인데 반해, 그린스펀은 불확실하므로 오히려 어떤 경직적인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유연하게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펀드 매니저도 지적인 틀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펀드는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지 자신의 이론적 생각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펀드는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천수답 펀드가 되어 버린다. 핌코(Pimco)의 토탈 리턴(Total Return) 펀드는 파생상품도 적극 취급하는 등 선택의 폭을 넓혀 운용을 한 것이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높은 수익률을 얻게 된 한 요인이다.
그린스펀이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쓰기 때문에 그는 경제를 예측해서 미리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경제예측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경제는 기본적으로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변하므로 경제모형에서 계수값이 계속 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An ongoing challenge for the Federal Reserve … is to operate in a way that does not depend on a fixed economic structure based on historically average coefficients).
그래서 그는 다만 데이터를 자세하게 보면서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계속 검토하고 이들 중 어떤 것이 지속되고 어떤 것이 사라져버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마치 간호원처럼 경제의 열을 계속 측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스펀이 점진적으로 정책을 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펀드의 운용도 예측에 너무 많이 의존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데이터를 계속 살펴보아야 하며 예측에 따라 포지션을 크게 조정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경제는 그렇게 만만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베팅 한번 해봐서 운용을 잘하게 되는 것은 운에 불과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테일러 룰 등에 의해 산출되는 정책금리를 그린스펀은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린스펀은 이렇게 최적화되어 나오는 해(solution)보다는 위험관리를 택한다. 우선 정확한 최적의 해를 계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적의 해를 계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평균화된 값인 최적값을 구하는 것보다는 견고함(robustness)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값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하려 하면 그만큼 그 값이 맞을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어떤 구간으로 구하게 되면 하나의 값으로 산뜻하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틀릴 확률도 적어진다.
그린스펀은 어떤 이론적인 최적값을 구해서 이를 따르는 것보다는 통화정책 운용에서는 실패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넓은 범위의 값을 선택범위에 두고 확률이나 그 외 상황을 모두 감안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낮은 가능성의 상황 변화이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매우 크다면 통화정책을 최적의 해보다는 보험까지 감안하여 결정할 필요도 있다. 위험관리를 하는 것인데, 2002년과 2003년에 그린스펀이 확률은 낮지만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과 제로 금리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테일러 룰에 의한 것보다 대폭 인하하여 보험을 든 경우가 그 예다.
펀드도 마찬가지다. 한 예측값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값의 구간을 상정하고 여기에 주관적인 확률을 부여하여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그 시나리오가 일어났을 경우 회복하기 쉽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정도로 펀드의 포지션을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펀드도 보험이 들어 있어야 한다. 수영장에 물이 빠졌을 때 발가벗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처럼 펀드는 과도한 집중 투자보다는 분산된 투자를 하면서 다양한 선택을 통해 부가가치를 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펀드가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 운용자의 주요 목표인 것이다. 핌코는 자신이 있을 때 20%정도의 포지션을 가져가며 그 외의 경우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펀드의 수익률을 조금씩 더해가고 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성과가 좋은 비결이다.
그린스펀은 통화정책은 물가 목표이외에 잠재성장을 밑돌 정도로 성장 잠재력을 해치는 경기침체는 피해야 한다고 본다. 즉 국가라는 펀드를 운영하면서 잠재성장률이라는 벤치마크를 너무 하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운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게도 그린스펀은 재임기간 동안에 가벼운 경기침체를 두 번 정도 겪었을 뿐이다.
펀드도 주어진 BM(벤치마크)을 하회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도록 놓아두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BM과 다르게 포지션을 취한 뒤 상황이 반대로 전개되어 BM에 미달하게 되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그 포지션을 계속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외로 반대 상황이 계속되면(이런 일은 허다하다) 펀드는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가지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통화정책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무력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세적인 조정을 통해서 하는 적극적인 방식이 높은 성과를 보장해 주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운용하게 되면 이러한 방식이 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성공한다면 사회는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펀드의 성과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가져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무력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펀드를 운용할 때도 점진적인 변화, 유연성과 개방된 선택 범위, 현재의 데이터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 운용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위험관리, 미세적인 조정 등이 있다면 펀드의 수익률은 좋을 것이다. 설혹 운용에 실패할지라도 많은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계속 이어진다고 본다면 해당 펀드의 장기 성과는 좋을 수 밖에 없다. 아마 핌코의 토털 리턴 펀드도 이런 운용 기준에 따른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