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차선시비에 밀리자, 애먼 女납치살인[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3.05.02 00:00:15

신호위반으로 차선시비 붙어서 벌금형 선고받은 김일곤
운전자 협박했지만 통하지 않자 유인해 살해하려고 계획
이 과정서 무고한 여성 납치해 살해 범행..무기징역 확정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5년 5월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차도에서 붙은 시비가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오토바이를 운전자가 차선을 침범해 차량 진로를 방해했다. 이 일로 두 차량에 탄 남성이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오토바이 운전자만 폭행 혐의로 입건되고, 차량운전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먼저 신호를 위반하고 폭행을 행사한 쪽이 오토바이 운전자였다.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은 오토바이 운전자 김일곤은 분노했다. 내재된 악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김일곤(가운데 파란 수건으로 손을 가린 이)(사진=연합뉴스)
김일곤은 재판이 끝나고 나서 차량 운전자 A씨를 찾아갔다. 자신만 처벌받은 것도 억울한데 벌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 분해 있었다. 그래서 A씨에게 벌금을 대신 내라고 했다. 거부하자 흉기를 꺼내어 위협했다. A씨가 김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자 김은 외려 뒷걸음질하면서 물러섰다. 그러고는 A씨를 살해하려고 계획을 짰다.

김이 생각한 방법은 유인책이었다. 여성을 통해서 A씨를 꾀어내어 방심한 틈을 타서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 것이다. 그러려고 김은 그해 9월9일 충남 아산시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여성 운전자를 납치했다. 김은 납치한 여성을 태우고 도망하다가 저항하자 살해했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단지 김은 A씨에게 복수하는 데에 피해자를 이용하려다가 여의찮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김은 사체를 훼손하고 차량에 유기해 불에 태웠다.

전국에 수배가 내려지고 김은 9월17일 검거됐다. 동물병원에 들러서 안락사 약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붙잡힌 김은 취재진에게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여성을 살해한 것은 A씨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여죄도 드러났다. 범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다른 여성을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실도 밝혀졌다.



검거 당시 김의 품에서는 이른바 살생부가 발견됐다. A씨의 이름을 포함해 오토바이 사고 당시 자신을 냉대한 병원 관계자, 수사와 재판에서 자신에게만 죄를 물은 수사기관과 법관 등의 이름이 나왔다. 이름을 모르면 직업만 특정하기도 했다. 당시 전과 22범의 김은 그간 저지른 잘못과 이에 따른 처우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탓이라고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법원은 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사형보다 낮은 형량이었다. 항소심에서도 형량은 무기징역이었다. 이 형량은 이대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