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 법정서 증인 살해..내연녀 가족 몰살 사건[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3.04.20 00:03:00
내연녀 모친 폭행해 징역간 임병석, 74년 4월20일 출소
곧장 내연녀 찾아가 가족 살해해 무기징역 확정
유족 살해 계획꾸며 끝내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와 살해
사법 사상 초유의 일에 온나라 경악..사형 확정돼 집행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74년 4월20일. 폭행죄로 복역하던 임병석이 출소한 날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틀이 지난 새벽에 내연녀 집을 찾아가 흉기로 내연녀 가족을 공격한 것이다. 평소 가족이 자신을 못마땅해한 데 대한 복수였다. 원래 출소 이튿날 찾아갔다가 가족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다음날 파출소를 탈출해 이성을 잃고 내연녀 집을 찾아가 저지른 범행이었다.
당시 서른넷이던 임의 내연녀는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임의 폭력에 시달린 탓이었다. 그러자 임은 내연녀 집을 쫓아가 결혼을 요구했다. 집에서 반길 리가 없었다. 폭력적인 성향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임은 절도 전과자였고, 이미 한 차례 이혼하고, 딸까지 가진 처지였다.
그럼에도 임은 결혼을 요구하면서 집안과 충돌했다. 결국 임은 내연녀의 모친을 폭행하는 바람에 징역을 살게 됐다. 앞서 임이 폭행죄로 징역에 갔던 게 이런 이유에서였다. 출소한 임은 앙심을 품고 다시 내연녀의 집에 찾아가, 그날의 참극을 벌인 것이다. 이날 내연녀의 조모는 현장에서 숨졌다. 모친과 자매는 중상을 입었다. 범행 직후 붙잡힌 임은 다시 구속됐다. 출소한 지 사흘 만이었다. 이후 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복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방에서 임은 내연녀의 집으로 협박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교도소 검열을 피하려고 감옥에서 사귄 범죄자가 출소하는 편에 편지를 들려 보냈다. 편지에는 “밖에 나가면 가족을 몰살할 것”이라는 내용 등이 쓰였다. 임은 협박죄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기결수가 외부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 모든 게 다 임의 계획이었다. 이로써 자신의 협박 혐의 재판에 내연녀의 부친 A씨가 출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은 맞았다. 1974년 10월17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1호 법정, 임과 A씨는 같은 재판에 출석했다. 임은 자신의 협박죄 당사자로서, A씨는 임의 협박죄 피해자이자 증인으로서였다. 그 법정에서 임은 미리 준비해간 흉기를 A씨에게 날렸다. 흉기는 교도소에서 숨겨왔고, 수갑은 점심에 나온 나무젓가락을 숨겨뒀다가 풀었다.
범행이 벌어진 법정은 아수라장이 됐다. 애초 임은 흉기를 꺼내어 검사석으로 돌진했다. 검사가 몸을 피하자 법대 위의 판사에게 다가갔다. 판사는 법정 뒷문으로 피신했다. 법정 방호원은 검사와 판사를 보호하고 있었다. 교도관은 다른 재소자의 동요를 막기 위해 임을 제지할 여력이 없었다.
임은 방청석으로 몸을 숨긴 A씨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A씨는 법정 밖으로 도망했고, 뒤쫓아온 임의 흉기에 급소를 찔려 숨졌다. 임은 A씨를 살해하고 그대로 법원 밖으로 도망했다. 왼손에는 반만 풀린 수갑을, 오른손에는 흉기를 든 채였다. 멀리 가지 못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임은 자수했다.
사법 사상 초유의 사건에 나라가 뒤집혔다. 증인이 신변을 우려하면 제대로 증언하지 못하고, 이래서는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사법 정의는 진실에 터를 잡아 구현된다. 그러므로 임의 법정 증인 살인은 사법 정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범행을 계획한 것 자체도 극악스러웠다. 무기수라서 출소하기 어렵자 범행을 실행할 방법으로서, 협박편지를 보내어 피해자와 재회를 꾸민 것이다.
임은 재차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판결은 확정됐다. 임은 1975년 8월2일 사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