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더 졸라서?" "장렬히 전사?"…고장난TV 다다익선, 어떻게 회생했나

by오현주 기자
2022.10.06 00:01:00

"많을수록 좋다"는 백남준 철학따라
''개천절 상징'' 1003대 모니터탑으로
1988년 제작 5억, 2022년 수리 37억
전량 보수해 4년여만 ''뇌사''서 깨워
브라운관 모니터에 LCD 숨기기도
''원형유지'' ''최신기술'&a...

지난달 30일 오후 2시, 2018년 2월 ‘뇌사’ 판정 이후 극적으로 되살려낸 백남준의 ‘다다익선’(오른쪽)이 불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4개월 전인 5월 30일, 대대적인 수리·복원작업을 마무리한 ‘다다익선’이 장비를 잔뜩 얹은 채 시험운전을 하던 때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장면1. 1988년 4월 11일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예전에 없던, 이후로도 미술관에선 흔치 않은 ‘약정식’이란 게 열렸다. 계약자는 둘,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안시환 삼성전자 대표이사. 여기에 중요한 배석자가 있었으니 백남준(1932∼2006)이다. 맞다. 이 자리는 ‘백남준 비디오인스톨레이션 다다익선 제작용 모니터 기증’을 계약하는 모임이었던 거다. 이날 삼성전자로부터 기증받은 ‘TV 모니터’는 1300대. 당시 가격으로 3억원어치였다.

1986년 10월, 백남준이 ‘다다익선’ 설치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이같은 ‘의기투합’은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백남준은 ‘설치프로그램’을 무료로 내놨고, 재료비·경비는 미술관이 부담하기로 했으며, 도면 등 구조물 설계는 건축가 김원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나섰더랬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흔쾌히 내놓은 모니터까지 모이면서, 소요예산 5억 2362만 8000원짜리 거대한 프로젝트가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린 거다.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방문한 백남준. 1986년 10월 바로 이곳에 ‘다다익선’ 설치계획을 발표한 뒤 한창 구조물 보완은 물론 예산·모니터 공급 등을 논의하던 시기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장면2. 2019년 9월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예전에 없던, 이후로도 흔치 않을 ‘미술품 복원 프로젝트’를 알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다다익선 복원 방향 및 계획 발표’란 타이틀이 붙었다. 2018년 2월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을 진단받고 가동을 전면 중단한 ‘다다익선’을 앞으로 어찌할 건가 세상에 공표하는 자리였던 거다. 전원을 꺼버린 ‘다다익선’은 회복도 불가능하고 수술도 어려운 ‘뇌사’에 빠져 있었던 터. 미술관의 결론은 이랬다. “3년간 ‘원형대로’ 수리·복원작업을 거쳐 2022년 다시 불을 밝히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설마 갈아끼울 브라운관 모니터는 있겠지?” “몇 개 없다고? 그럼 어찌 복원할 건데?” “삼성이 처음 이후에도 수백대를 제공했다며. 더 내달라고 해봐. 만들어달라고 하든지.” “LED·LCD, 요즘 좋은 거 많잖아. 수명도 길다는데 이참에 싹 바꾸자.” “그렇게 복원하곤 원작이라 하겠어? 작가 의도는 무시하는 거야?” “원형대로 브라운관? 그게 좋은 걸 누가 모르나. 그러다 또 고장 나면 그땐 어쩔 건데?” “다 시끄럽고. 차라리 장렬히 전사시키자. 그것도 의미가 있어.”

불이 모두 꺼졌을 때의 ‘다다익선’(2022).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설치된 이후 34년을 ‘버텨온’ 다다익선은 2018년 2월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이란 공식 진단을 받고 상영을 전면중단한 채 3년에 걸친 대대적인 보수·복원작업을 진행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늘이 열린 날(개천절)인 10월 3일에서 따왔다는 1003대의 ‘배가 불룩한 모니터’ 집합체. 높이 18.5m, 기단부 지름 11m의 원형 8층 영상탑을 차곡차곡 타고 오른, 6인치(60대) 10인치(552대) 14인치(93대) 20인치(103대) 25인치(195대) 브라운관. 1986년 제작에 들어가 1988년 완성·설치한 이후 34년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지켜온 무게 16t의 거대한 상징.

지난달 30일 오후 2시, 2018년 2월 ‘뇌사’ 판정 이후 극적으로 되살려낸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서서히 불을 밝히고 있다. 3년여에 걸친 이번 보수·복원작업을 통해 1003대 중 갈아끼운 모니터는 737대. ‘원형대로’의 취지대로 중고 브라운관(CRT) 모니터와 부품을 수급했다. 나머지 266대는 상단의 6·10인치 CRT 모니터 속에 LCD를 숨겨 넣는 ‘최신기술’로 이식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결국 그 ‘상징’이 돌아왔다. 3년 전 약속대로 2022년 10월 3일, 하늘을 여는 대신 원형 영상탑 전체에 달린 모니터 1003대를 열었다. ‘뇌사’ 판정 이후 4년 7개월여만이다. 사실 보수·복원을 마무리하고 대대적인 제2의 제막식을 열었던 건 지난달 15일이다. 34년 전 첫 가동일을 기념한 거다. 하지만 ‘다다익선’의 상징은 어디까지나 개천절이다. “많을수록 좋다”(다다익선)는 백남준의 철학이, 당시로선 최대치였을 1003대의 브라운관(CRT) 모니터 수에 닿아 있으니까.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중 최대 규모인 ‘다다익선’은 보존·복원일지만도 족히 책 한 권은 넘긴다. 수리·보수가 비단 이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CRT 모니터의 수명 탓. 전문가들까지 “이들의 수명은 10년 남짓”이라 입을 모았지만, 30년이 넘도록 중고 모니터를 찾아 땜질하는 식의 억지수명을 연장해왔던 거다. 수리 때마다 마지막이란 경고가 붙었더랬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설치하던 때의 전경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설치하던 때의 전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 즐거운 협연’에 나온 자료사진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다다익선’의 노후화 문제는 2002년 본격화했다. 화재로 가동을 중단하고 이듬해인 2003년 설치 15년 만에 모니터를 전면교체하는 대수술로 상황을 무마했다. 이미 작동이 안 되는 모니터가 50%를 넘겨왔던 터. 1988년 모니터를 전량 지원했던 삼성전자가 470대를 내놓고, 필요한 부품을 구하러 황학시장을 뒤지고 아프리카까지 헤집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검정 브라운관을 은회색으로 바꾼 것도 그때다. 당시는 백남준이 타계하기 전이라 협의가 수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그러다가 2015년 3분의 1이 멈춰 섰고 320대를 갈아끼워야만 했다. LED 얘기가 스멀스멀 삐져나왔지만, 이때는 백남준이 타계한 뒤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답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 2월, 결국 모든 작동이 완전히 멈추는 단계에까지 이른 거다. 상단부에 누전을 확인한 직후였다.

2021년 ‘다다익선’ 보수·복원작업 중 10인치 모니터를 재설치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 즐거운 협연’에 나온 자료사진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다다익선; 보존복원 과정 기록 영상’(2022) 중 부분.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 즐거운 협연’에 나온 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3년여의 최장을 기록한 이번 보수·복원작업에서 손을 댄 모니터는 1003대 전량이다. 그중 737대는 중고 CRT 모니터와 부품을 수급해 수리했고, 상단의 6·10인치 CRT 모니터 266대는 LCD로 바꿨다. 특히 그 266대는 배가 불룩한 모니터 안에 납작한 LCD를 숨겨 넣는 방식으로 이식해 ‘원형유지’와 ‘최신기술’의 적절한 타협을 봤는데, 여기에도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투입됐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든 수리비는 총 37억원. 3년 전 예상보다 7억원이 더 나왔다.

지난 30일, 보름 전 요란한 새 출발을 알린 뒤 다시 찾은 ‘다다익선’은 평안한 상태였다. 오후 2시, 관람객과 약속한 시간이 되자 껌벅껌벅하던 눈들이 일제히 반짝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까지 거두진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모니터가 다시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으니까. 이 역시 예상 못한 일은 아니다. CRT 모니터가 한 대라도 남아 있는 한 ‘10년 수명’ 얘기는 따라붙을 테니까. 어차피 ‘다다익선’의 보수·복원은 영구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일제히 가동을 시작한 ‘다다익선’. 하지만 1003대 모니터 중 몇몇은 끝내 불을 켜지 못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심란한 우려와 포기할 수 없는 기대가 교차하는, 사실 이 상황을 먼저 내다본 이는 백남준이다. “영원성의 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1965년 한 인터뷰)이라고, “아름답게 변해서가 아니라,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1961년 ‘20개 방을 위한 교향곡’)고 미리 언질하지 않았던가.

1988년 완성을 본 뒤 매일 8시간씩 가동했던 ‘다다익선’도 이젠 관리에 들어간다. 4일부터 한 주에 8시간(목·금·토·일요일 오후 2∼4시)만 관람객을 만나는 건데. ‘수명연장’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놓은 고육책이랄까. 대신 ‘고장난 TV 다다익선’의 34년 역사는 따로 챙긴다. 이번 재가동부터 거꾸로 되짚는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내년 2월 26일까지 이어간다.

2022년의 ‘다다익선’. 1988년 완성·설치한 이후 34년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지켜온 무게 16t의 거대한 상징인 ‘다다익선’은 높이 18.5m, 기단부 지름 11m의 원형 8층 영상탑으로, 하늘이 열린 날(개천절)인 10월 3일에서 따왔다는 1003대의 ‘배가 불룩한 모니터’ 집합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이은주의 ‘백남준 초상’(1992).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 즐거운 협연’에 걸었다.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백남준과 친분을 쌓았다는 이 작가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하던 백남준 말년의 일상과 작업실까지 촬영한 거의 유일하게 사람이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아카이브 기념전: 즐거운 협연’ 전경 중 부분. ‘N.J.P’(1987) 연작과 ‘오리엔탈 페인팅 원본’(1987) 등 ‘다다익선’의 1003대 모니터에 흐르는 영상을 따로 구성했다. 영상은 서울의 동대문과 남대문, 고려청자·한복 등과 파리 개선문, 뉴욕의 고층빌딩 등이 교차하다 어우러지고 하나로 추상화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