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최대 IT기업 화웨이에는 '블랙스완' 있다

by신정은 기자
2021.04.09 00:00:00

[신정은의 중국기업 탐방기]⑮화웨이
런정페이 집무실 앞 마스코트 '블랙스완'
보따리 상에서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로
고객 최우선, 연구개발에 대규모 투자
12개 유럽 도시 본떠 R&D 캠퍼스 건설

화웨이 본사 안 호수에 블랙스완 3마리가 보인다. 사진=신정은 기자
[선전(광둥성)=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설사 ‘블랙스완(흑조·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악재)’이 발생하더라도 화웨이의 ‘커피잔’ 안을 날아다닐 것이다. 우리는 시의적절하게 ‘흑조’를 ‘백조’로 변화시킬 수 있다.”

화웨이(華爲)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은 미중 무역전쟁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화웨이는 지난해 미국의 전방위적인 제재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예년보다 성장률이 크게 줄었지만 매출은 8914억위안(약 153조억원)로 3.8% 신장이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현대자동차 매출(약 104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중국 민영 기업 중 1위다. 미국이 전방위로 화웨이 옥죄기에 나선 최악의 사태속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31일 중국의 IT 굴기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화웨이 본사를 방문했다. 화웨이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신기자의 본사 방문을 허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인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본사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는 런 회장의 2층짜리 집무실이 보였고 바로 앞 호수에는 런 회장이 직접 호주에서 가져온 블랙스완 세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블랙스완은 화웨이의 마스코트다.

런정페이 회장 집무실 인근 건물. 집무실은 조금 더 안쪽에 있다. (오른쪽 위는 런정페이 회장 사진)
지난 1987년, 장교 출신의 런 회장은 단돈 2만1000위안(약350만원)을 들고 선전시에 ‘화웨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중화민족 위해서’라는 뜻이다. 처음엔 보따리상이나 다름없었다. 화웨이는 홍콩에서 유선 전화 교환기를 수입해 팔다가, 공급이 끊기자 직접 통신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화웨이 본사에서 만난 장 프랑스와 트랑블레 공공관계부 수석은 “화웨이는 1993년 통신 회사에 자체 제작한 설비를 공급을 시작했는데 당시 외국회사나 국유회사에 비해선 규모가 아주 작았다”며 “생산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화웨이는 계속 에프터서비스(AS)를 해주는 전략을 썼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이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장 프랑스와 트랑블레 공공관계부 수석이 화웨이 5G 전시관 앞에 서있다. 사진=신정은 기자
트랑블레 수석은 “화웨이는 디지털 통신 스위치인 C&C8을 개발했지만 품질이 너무 떨어져 연구개발에 투자를 확대했다”며 “그때 돈이 부족해 직원들에게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창업주이긴 하지만 런 회장은 화웨이 주식의 0.9%만을 소유하고 있어 오너 소유 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화웨이는 종업원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종업원 지주제 회사를 고수하고 있지만 미국 등에서는 중국 정부가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화웨이의 첫 히트작인 ‘C&C8’은 농촌에서 쥐가 자꾸 통신선을 끊어 먹자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다. 작은 발견으로 이룬 성과다. 화웨이는 해외 진출을 통해 급성장을 이뤘다. 런 회장은 1996년부터 매년 수백명의 직원을 해외로 파견했고, 2000년대 초반 화웨이는 40여개 국가에 진출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선전 본사에서 가장 높은 건물. 사진=신정은 기자
화웨이는 3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로 성장했다. 화웨이 관계자들의 설명을 분석해보면 그 비결은 △고객 최우선 △아낌없는 연구개발(R&D) △선택과 집중 등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런 회장은 “고객이 존재 이유다”라고 했다. 혁신적인 제품보다 고객의 수요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 쪽을 택한 것이다. 좋은 제품이 나오면 그에 따른 불편함을 개선해 더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이다. 화웨이 직원들은 매년 인사 평가에서 “고객을 위해 어떤 공헌을 했나”라는 질문에 답 해야 한다고 한다.

화웨이 R&D 캠퍼스 안 다리위로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신정은 기자
화웨이는 매출의 14%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8%)보다 많다. 종업원 지주회사여서 가능한 투자라는 게 화웨이의 설명이다.



화웨이 부지면적은 약 1.26㎢로 여의도 크기 절반 수준이다. 건축학도인 런 회장의 고심이 담긴 건물들이 본사 부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모두 각자 자기만의 정체성을 자랑한다. 가장 높은 건물이 21층이다.

화웨이 R&D 캠퍼스의 한 건물. 프랑스 파리 건물의 건축양식을 본떠 만들었다. 사진=신정은 기자
이게 끝이 아니다. 본사에서 40㎞ 떨어진 둥관시에는 더욱 화려한 화웨이 숭산(松山)호 시춘(溪村) R&D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캠퍼스가 위치한 호수 지형이 황소뿔을 닮았다고 해서 옥스혼(Ox horn) 캠퍼스로 불린다.

이곳 건물은 파리, 베로나, 브뤼헤, 룩셈브루크 등 유럽의 12개 도시 건축양식을 본떠 만들었다. 유럽풍 건축물을 좋아하는 런 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캠퍼스에는 빨강, 주황 트램이 오갔다.

가이드는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지난 2015년부터 이곳에 R&D 캠퍼스를 짓기 시작했다”며 “2019년부터 입주를 시작해 코로나19로 지난해 말에서야 연구인력 2만여명의 모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화웨이의 R&D 총 직원은 전체(약 19만명)의 절반이 넘는 9만6000명에 달한다.

캠퍼스 크기는 선전 본사와 비슷하다. 캠퍼스에는 예약된 손님을 제외하곤 출입이 금지된다. 직원들의 업무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다. 화웨이는 주말에만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이곳을 개방하고 있는데, 신청에 성공하더라도 3개월은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화웨이 R&D 캠퍼스 안에서 운행 중인 트램. 사진=신정은 기자
캠퍼스 내 강위 다리에서 만난 연구원 황웨이 씨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만족스럽다”며 “업무 강도가 줄어든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쌓일 때 캠퍼스를 걷다보면 상쾌해지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거리 곳곳에는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런 회장이 “커피 한잔은 우주의 에너지를 마시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해 직원들에도 티타임을 권장한다고 한다.

가이드는 화웨이가 직원들에 대한 복지도 신경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곳에서 3년 이상 일하는 직원은 주변시세보다 저렴하게 사택을 구매할 수 있고, 야근을 하게 되면 저녁 10시30분 이후 주변 호텔에서 무료로 머물수 있다. 또한 캠퍼스 안 16개의 커피숍은 모두 은퇴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화웨이는 해외 매출 비중이 지난해 50%에서 35%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중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IT기업이다. 화웨이가 블랙스완을 이겨내고 ‘중국의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을지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화웨이 R&D 캠퍼스 안 카페에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신정은 기자
화웨이 야근자들이 머무는 호텔과 사택 전경. 사진=신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