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민구 기자
2016.06.03 03:00:00
타임머신을 타고 183년전인 1833년 영국으로 돌아가 보자. 이때는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시점이었다. 영국의 한 마을에 목초가 풍부해 가축 기르기에 적격인 초원이 있었다. 초원 인근에 살고 있는 목동들은 가축을 끌고 와 풀을 먹였다. 땅은 넓고 가축 수가 적어 가축이 풀을 마음껏 뜯어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초원에 점점 더 많은 가축이 몰려오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좋은 풀은 줄어들고 대지는 오물로 가득 찼다. 초원은 결국 방목할 수 없는 황무지로 전락했다.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가 1833년에 소개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터버버라 소속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게재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모은 이 이론은 개인 이익과 공공 이익이 서로 부딪칠 때 개인 이익만 고집하면 경제주체가 파국을 맞는다는 교훈을 일깨운다.
환경오염은 ‘공유지의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초원뿐만 아니라 물, 공기, 토양 등 주인이 없는 ‘자유재’는 쉽게 황폐화된다. 공장에서 내보내는 폐수로 인근 하천이 썩어가고 공중화장실이나 국립공원이 지저분하고 쓰레기가 쌓이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낙후된 시민의식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미세먼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공장, 화력발전소, 자동차 등에서 ‘침묵의 살인자’ 미세먼지를 연일 뿜어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탓이라고 선뜻 손을 들지 않는다.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는 셈이다.
설상사상으로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는 엇박자 대책만 내놓고 있다. 이들 부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 주범이 중국이라며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시피 했다. 그러다 미세먼지 주범이 경유차라는 지적이 나오자 일제히 ‘경유차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유차가 친환경 녹색성장의 상징이라며 친환경 자동차로 분류한 후 혼잡통행료를 깎아주고 환경개선부담금도 면제해준 정부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등어와 삼겹살도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공장과 보일러나 발전소 등 제조업 부문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가 전체의 52~65% 가량이라는 환경부 자료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 경유값 인상카드나 고등어·삼겹살 타령만으로는 해결책이 요원하다. 오히려 이번 미세먼지 파문을 계기로 공장 등 제조업 부문의 화석 에너지원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기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산업용 에너지원으로 신(新)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혁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공장, 대형사업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제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 메커니즘 보다는 엄격한 규제를 강화하는 ‘보이는 손’이 더 절실하다. 살인적인 미세먼지를 앞에 두고 한가롭게 경유값 인상이나 고등어 타령만 해서는 곤란하다. 국민의 자연권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책무라고 역설한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에게 한 수 배우기 바란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