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싱크홀' 재난, 과학기술 해결법은 없나

by이승현 기자
2014.10.01 00:00:07

美 인공위성·日 고성능 GPR 등 첨단장비 통해 싱크홀 사전대응
한국, ''사회불안'' 싱크홀 대응나서.."탐사장비 첨단화 등 과학적 접근해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2012년 8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바이우 콘에서 발생한 넒이 약 10만 제곱미터 규모의 초대형 싱크홀. 미 항공우주국 제공
지난 2012년 8월 3일 미국 루이지애나주(州)의 바이우 콘(Bayou Corne)에서 깊이 약 229 미터·넓이 약 10만1171 제곱미터 규모의 초대형 싱크홀(sinkhole·지반함몰)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지형자체가 변했지만 당시 화를 입은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정부가 과학적 근거로 싱크홀 발생을 사전 예측해 주민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공위성이나 자체 항공기(C-20A)를 이용해 지표면에 대한 레이더 조사를 해온 결과, 싱크홀이 발생하기 최소 한 달 전 심각한 지표침하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 바이우 콘 싱크홀 발생지역의 주변 땅은 싱크홀을 향해 수평방향으로 최대 26 센티미터까지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인 땅은 25만 제곱미터 규모에 달했다.

김창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오(geo)인프라연구실장은 “NASA 예측으로 싱크홀 발생지역 주민의 대피에 성공했다”며 “과학기술이 안전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소개했다.

최근 서울 송파구와 인천시 등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싱크홀로 인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싱크홀 발생 소식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아직 분명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처럼 싱크홀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선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싱크홀은 우리말로 보통 ‘지반함몰’(서울시는 ‘도로함몰’로 표현)로 해석되며 크게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자연적으로는 땅속 석회암 지반이 지하수에 녹아서 생긴 동공(洞空·지하 빈공간)이 커지면서 지표면 지반까지 무너져 발생한다. 한국의 지반은 대부분 화강암층이나 편마암층으로 석회암 지대는 1.5%에 불과해 자연적 요인에 의한 싱크홀 발생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대형공사를 위한 굴착 △지하수 양수 △상하수관거 훼손에 의한 토사유실 등 대부분 인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총 854건의 싱크홀 중 754건(88%)가 하수관 손상으로 발생한다. 이어 인접 굴착공사 등 기타요인이 92건(10%)이고 상수관 손상은 8건으로 1% 미만이다.

인위적 발생요인도 자연적 요인처럼 땅 속의 물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지하에서는 2.5미터씩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압력이 증가한다. 지하 25미터가 되면 10기압을 받는 셈이다.

지하에서는 지반과 지하수가 이 압력을 함께 버티는 데 만약 지하수가 없어지면 지반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 ‘제 2롯데월드’ 건축 사례에서 보듯 대형공사에서 지하수 유출량이 중요한 이유다.

상하수관 훼손으로 물이 새면 주변의 토사를 휩쓸어가 지반의 강도를 약화시킨다. 서울의 하수관로는 노후화 기준인 20년 이상이 73.3%(2013년 기준)를 차지한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에선 크고 작은 싱크홀이 연평균 681건 발생했다.

싱크홀 발견을 위한 대표적 탐사기술은 ‘지표투과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이다. GPR는 광대역 전자기파를 지표면 아래에 보낸 뒤 매질의 경계면에서 반사되는 파를 되받아 매질의 특성을 영상화하는 장치이다. 전자기파가 통과하는 매질에 따라 전파 속도와 파장, 반사 특성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해 지하내부 균열이나 공동의 존재 등을 알아내는 것이다.

지표투과레이더(GPR) 개념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제공
일본에서는 시속 60km의 속도로 지하 5미터까지 파악할 수 있는 차량용 GPR이 사용되고 있다. 지하 5미터 깊이면 도로 하부상태는 물론 상하수도관 상태도 확인이 가능하다.

접근이 어려운 상하수관 조사를 위해 로봇도 이용되고 있다. 상하수관 조사에 많은 비용과 인력, 시간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로봇은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세종시는 지난 3월부터 CCTV 장착 로봇인 ‘로보캠’을 실제 하수관에 투입, 굴착공사 없이 관속토사 퇴적상태와 균열부위 등 내부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도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NASA처럼 인공위성이나 항공사진을 이용한 관측방법은 아직은 보편적 수단은 아니다. 한국도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5호를 통해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지반침하 지역을 조사하지만 실용화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개발연구원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위협적인 재난으로 싱크홀(29.9%)이 홍수 및 태풍(39.6%)에 이어 2위로 꼽혔다. 그러나 서울시 등을 제외하면 전국 차원의 싱크홀 발생현황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싱크홀 문제에 대응하는 공적인 콘트롤타워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싱크홀 대처를 위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정부 종합대책을 내놓고 관련 입법도 추진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 29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하 매설물(상하수도·통신선 등)과 지하 구조물(지하철·차도 등), 지반 정보(시추·우물 등) 등을 통합한 ‘3차원(3D)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통합지도 구축은 싱크홀 예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사전대응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 상황에 대해 성능좋은 탐사장비가 부족한 데다 기존 자료 또한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통합지도 구축은 힘든 작업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서울시가 한 대 보유한 차량용 GPR은 일본 장비와 달리 시속 3~5km 속도에 지하 1.2~1.5미터만 측정 가능해 지하 2미터 깊이에 묻힌 상하수도관 상태는 살피기 어렵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본은 탐사장비를 첨단화하고 있다”며 “도로 표면이나 상하수관거에서 탐사하는 장비를 중앙정부와 함께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발생한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싱크홀(도로함몰) 현장에 현장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