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M&A는 4차 방정식

by백종훈 기자
2008.03.10 07:30:00

구사주 문제 등 채권은행간 견해차 여전
산업銀 민영화·경쟁매물·정치문제도 변수

[이데일리 백종훈기자] "변수가 많다. 그야말로 고차 방정식이다."

올해 인수합병(M&A) 업계 최대어로 꼽히는 현대건설 매각 개시여부에 대해 금융권과 건설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매각 개시시점과 향후일정 등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큰 M&A 변수만 해도 4가지가 넘어, 마치 4차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복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첫번째 변수(X)는 현대건설 옛 사주(현대그룹 등)의 M&A 참여여부, 이른바 구(舊)사주 문제가 꼽힌다.

9개 채권은행중 주관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 7일 주주협의회 결과를 밝히면서 "구사주 문제는 채권금융기관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매각주간사를 선정해 M&A를 진행하면서 최선의 처리방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간 `공감`에 대해선 온도차가 있다는 시각이다.

핵심은 약 50%인 채권단 매각제한지분중 외환은행(12.42%)과 거의 대등한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11.17%)과 우리은행(10.62%)의 태도다. 채권단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기타 지분까지 합하면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지분율은 각각 14.70%와 14.39%에 달한다.

산업은행은 예전처럼 구사주 문제를 들어 눈에 띄게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 관계자는 "굳이 3월에 매각주간사를 선정할 필요가 있느냐"며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또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수차례 구사주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던 만큼, 매각에 돌입하려면 새로운 명분도 필요하다.

우리은행은 입장표명을 유보해 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구사주 문제는) 회의를 더 해볼 것"이라고만 밝혔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언론보도를 통해 현대건설 매각 필요성을 일부 언급했었지만 채권은행간 합의를 전제로 한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외환은행과 나머지 6개 은행들은 대체로 지분을 매각해 올해 현금을 손에 쥐고 싶어하는 눈치다. 하지만 매각주간사 선정을 시작하려면 주요 주주인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찬성이 결국 필요하다.

두번째 변수(X)는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다. 이는 새 정부 출범직후 새롭게 부상한 변수다.



인수위를 거쳐 국정기획수석으로 발탁된 곽승준 수석은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한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등의 지분매각은 지주회사가 출범한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곽 수석은 더 나아가 "금융회사가 자회사로 비금융회사인 일반 기업, 즉 산업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말했었다.

곽 수석은 공기업 민영화와 대운하 등 대형 국정과제를 총괄하고 있다. 채권은행 관계자도 지난 7일 "구사주 문제 이외에도 산업은행의 상황이 여러가지로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변수(X)는 시장상황과 경쟁매물 추이다.

잠재적 인수자가 겹치는 대어(大魚) 대우조선해양이 남아있는 것. 현대건설의 잠재적 인수자로 꼽히는 현대중공업과 두산그룹 모두 대우조선해양 M&A에도 적극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은 매물이 겹치지 않도록 시차를 두고 순차 매각하겠다고 밝혔었다.

채권은행들이 현대건설과 대우조선해양중 어느 M&A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현대건설의 매각개시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변수(X)가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77년부터 1992년까지 15년이 넘게 현대건설의 CEO를 지낸 만큼, 채권은행들이 청와대의 `의중`을 알아볼 최소한 수개월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있다.
 
또 4월 총선이후 국책은행장 등 교체인사설이 돌고 있어, 김창록 총재가 올 11월 임기만료되는 산업은행이 `움직일 상황이 못된다`는 관측도 있다.
 
이밖에 잠재인수자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 정몽준 회장이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도운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과 정 회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힘을 합쳤다.

물론 정치적인 문제가 경제적인 이슈로 전이될 경우, 현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 회장과 현대중공업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IB(투자은행)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범현대가(家)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를 측면 지원하는 형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중공업이 KCC를 지원하는 대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 전후를 확보하게 되면 현대상선을 주축으로 하는 현대그룹의 경영권도 위협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반면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이 몸담았던 현대건설 인수의지를 가장 확실하게 밝히고 있으며, 2~3년전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다. 다만 5조원이상의 자금조달은 과제로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이 KCC와 손잡고 현대건설(000720) 인수전에 뛰어든다면, 유리하든 아니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역차별을 받든 M&A 양상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