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투-헤드' 임상...글로벌1위 기업과 '맞붙은' K바이오
by석지헌 기자
2025.03.13 09:40:07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기존 글로벌 제품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능을 직접 비교하는 ‘헤드-투-헤드’(head-to-head) 임상을 시도하는 국내 바이오·의료기기 업체들에 관심이 모인다. 이들 업체는 단순히 ‘비열등성’만 입증하는 것을 뛰어넘어 기존 제품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과시, 시장 판도를 뒤흔든다는 전략이다.
 | [김일환 이데일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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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투-헤드 임상시험은 특정 치료제 또는 의료기기가 기존 표준 치료제(대조군)와 직접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의미한다. 단순히 신약이나 신기술이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을 넘어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경쟁 제품과 비교해 동등하거나 우월한 성능을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전적인 방식으로 통하지만, 임상에서 성공할 경우 시장 내 입지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약 대조군을 사용하는 임상시험보다 실제 임상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의사나 의료 정책 결정자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치료법을 기존 치료법과 비교, 직접적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어 신뢰도가 높은 임상 방식으로 꼽힌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넥스트바이오메디컬(389650)은 색전 치료재인 ‘넥스피어’와 현재 색전 치료재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제품인 ‘엠보스피어’와의 효능을 직접 비교해 경쟁력을 입증했다. 넥스피어는 간암과 자궁근종 치료에 사용되는 혈관 색전 미립구다. 색전 치료재는 출혈이 발생한 혈관 또는 조직의 비정상적 성장을 일으키는 과형성된 혈관, 종양 등과 연결된 혈관을 고분자 물질로 막아 지혈하거나 괴사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자궁근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자궁 동맥 색전술에서 넥스피어와 엠보스피어를 비교했다. 자궁동맥 색전술은 근종으로 이어지는 혈관을 일주일에서 한 달 기간까지 막아 근종을 괴사시키는 시술이다. 비수술적 치료 방법으로 수술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근종 크기를 작게 할수 있다.
대조군으로 사용된 미국 메리트 메디컬 시스템즈 사의 엠보스피어는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이 80~90%에 달하는 색전 치료재다. 나스닥에 상장된 메리트 메디컬의 시가총액은 약 9조원이다.
임상 결과 두 제품 모두 97%라는 대등한 시술 성공률을 보였으며, 시술 후 통증이나 안전성 면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넥스피어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전 치료재와 대등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자궁근종 색전술 전문가인 제임스 스파이즈 교수는 “오랫동안 이상적인 색전물질을 찾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연구”라며 “이러한 견고한 연구가 색전 물질 평가의 초기 단계에서 완료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동등성 입증을 넘어 넥스트바이오메디컬 제품만의 차별점도 돋보였다. 바로 ‘체내 분해성’이다. 엠보스피어는 몸 안에 색전 물질이 영구히 남아있는 반면, 넥스피어는 분해돼 배출된다는 것이다.
이돈행 넥스트바이오메디컬 대표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직접비교 임상을 하기 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했다”면서도 “다행히 정부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한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임상시험 전 동물시험을 통해 최소한의 데이터 근거를 확인했다. 다행히 결과가 잘 나왔고 해당 논문이 나오면서 유럽 쪽에서 수주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웨어러블 인공지능(AI) 기업 씨어스테크놀로지(458870)의 경우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 필립스의 환자 모니터링 솔루션 ‘인텔리뷰 MX40’(IntelliVue MX40)과 비교 임상을 진행했다. 필립스 제품은 국내 중환자실 환자 모니터링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점유율 1위 제품이다.
임상 결과 씽크는 인텔리뷰와 동일한 수준의 부정맥 감지율을 증명했고 대조군보다 우수한 신호 품질을 확인했다. 두 제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씨어스는 무선이고 필립스는 유선이라는 것이다.
임상을 진행한 임홍의 중앙대 광명병원 심장내과 교수에 따르면 무선이 아닌 필립스 제품은 환자가 움직일 때마다 전선이 쓸려 노이즈가 생기는 반면 씨어스 제품은 10g 남짓한 패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호잡음과 손실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
씽크는 웨어러블 바이오센서를 활용해 환자의 심전도, 체온, 산소포화도, 혈압, 심박수 등 주요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AI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는 스마트 병상 모니터링 솔루션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상태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의료진에게 신속히 알림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강점은 기존 글로벌 제품이 중환자실에서만 사용됐다면, 씨어스테크놀로지의 씽크는 일반 병동에도 최적화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실제 씨어스는 지난 5년 간 중환자실보다는 일반 병동을 중심으로 모니터링 시스템 검증을 진행했으며,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일반 병동은 순환기, 신경과, 호흡기, 내분기 병동부터 투석 병동, 격리 병동, 집중치료실, 재활실, 응급실 등으로 다양한데, 현재 대부분의 병동에서 씽크의 도입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4년 3분기 말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전국 병상 수는 약 71만개인데, 이 중 중환자실은 1.7%에 그친다. 나머지 일반 병상에도 씽크가 도입된다고 가정했을 때 확장성이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케어젠(214370)은 황반변성 점안액 ‘CG-P5’를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안과질환 치료제 중 하나인 독일 바이엘과 미국 리제네론의 ‘아일리아’와 직접 비교 임상을 진행한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다만 임상 전체를 직접 비교로만 진행하진 않고, CG-P5 투여군과 위약 투여군 그리고 기존 치료제인 아일리아 투여군으로 나눠 진행한다.
아일리아는 현재 황반변성과 당뇨망막병증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쓰이고 있으며 2023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이 약 70억 달러(9조3000억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다. 현재 매출 규모는 13조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케어젠은 임상 1상임에도 임상 2상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계돼 시장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2023년 7월 25일 임상 계획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은 지 2년 가까이 흘렀으나, 현재까지 목표 환자 수인 45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