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암젠 탄생 가시화...올해 글로벌 50위 제약사 등장 확실
by송영두 기자
2025.03.12 12:09:07
[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셀트리온(068270)이 올해 나란히 5조 매출을 목표로 하면서 K바이오 역사상 최초로 글로벌 50위권(매출 기준) 진입 여부가 관심사다. 글로벌 50위 내 제약사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분류되는 빅파마 기준의 척도다. 특히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등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 글로벌 30대 기업으로의 퀀텀점프도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글로벌 제약사 50위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글로벌 제약사 척도를 50위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신약 R&D-인수합병(M&A) 등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 기준치이기도 하다. 바이오벤처가 50위권에 진입한 뒤 글로벌 30대는 물론 10위권 제약사로 도약한 사례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암젠과 길리어드가 꼽힌다. 1980년 바이오벤처로 출발한 암젠은 자금난을 겪다가 1989년 세계 최초 생물학적 제제 빈혈치료제 ‘에포젠’을 개발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연매출 10억 달러 이상 블록버스터로 성장시키며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50위권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했고, 1998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을 개발하면서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7년 바이오벤처로 출발한 길리어드 사이언스도 1999년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 1996년 에이즈 치료제 비스티드 등을 개발해 2000년대 초 매출 30억원 달러를 기록하며 글로벌 50위권 내 기업으로 성장했다. 블록버스터 약물로 자금을 끌어모은 암젠과 길리어드는 이후 자체 R&D와 M&A를 통해 또 다른 블록버스터 약물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글로벌 제약사 14위(266억 달러), 15위(264억 달러)에 올랐다.
 | 자료=각 사 보고서.(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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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30대 제약사로의 도약 발판이 될 글로벌 50위권 제약사 진입의 의미가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7일 이데일리 분석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닥터 레디스 래보라토리스와 유사한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닥터 레디스 래보라토리스는 매출 2459억 5800만 루피로 매출 기준 글로벌 제약사 50위에 올랐다. 2024년 매출은 2792억3700만 루피(약 4조6040억원)로 집계됐다.
반면 2023년 3조694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무려 23% 증가한 4조5473억원의 매출을 냈다. 아직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다 이뤄지지 않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최초로 글로벌 50위권 기업 수준에 진입하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CDMO 기업이기에 공식적으로 글로벌 제약사 순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글로벌 50위권 제약사와 매출 규모를 견줄 정도가 될 정도로 성장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CDMO 분야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폭발적이다. 3년 전인 2022년 글로벌 CDMO 1위 기업 론자 연매출은 10조원으로, 매출 3조원을 올린 삼성바이오로직스와는 약 3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론자는 이후 2년동안 실적이 10조원 수준에 머물렀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같은 기간 격차를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줄였다. 올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낼 경우 격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카탈란트(연매출 5조4000억원)와도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 플레이어 도약은 핵심 전략인 생산능력, 포트폴리오, 글로벌 거점 등 3대 축 확장 전략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60만 4000ℓ 생산규모가 올해 5공장이 완공되면 총 78만4000ℓ로 론자를 뛰어넘는 글로벌 1위 규모를 확보하게 된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발전을 이뤘다. 이선경 SK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톱 20 고객사가 2023년 말 14개사에서 17개사로 확대됐다”며 “이는 단클론 항체 의약품 공급 과잉 상황에서 글로벌 CMO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특히 차세대 항암제와 혁신 기술로 꼽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사전충전형주사기(PFS) 전용 생산시설도 구축할 예정이다. 고객사와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미국 보스턴, 뉴저지, 일본 도쿄에 세일즈 오피스를 개소하는 등 글로벌 거점 전략도 기존 계약 확대 및 신규 고객사 유치 등 실적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매출 지속 성장을 통해 글로벌 30대 제약사 수준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 필요성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회사가 지속 성장 중이지만, 매출 10조원을 달성하려면 M&A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매출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시설을 계속 건설해야 한다. 제약바이오 기업 성장이 이어질 것이지만 10%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위탁생산을 100% 맡기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따라서 매출 10조원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생산시설을 계속 짓는다는 가정하에 M&A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출 10조원은 글로벌 제약사 28위인 리제네론 연매출 70억 달러와 맞먹는 규모다.
신약개발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는 셀트리온도 글로벌 톱 50위 제약사 도약이 유력하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올해 연매출 5조원을 자신했다. 암젠을 롤모델로 여러차례 강조한 것도 셀트리온이 암젠 모델 그대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는 “셀트리온은 어떤 제약사보다 탄탄한 제품을 갖고 있다. 현재와 미래 준비가 잘 된 회사”라며 “2024년 3조 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고, 짐펜트라가 계획대로 미국 점유율을 확대하면 2025년 연매출 5조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셀트리온 매출은 △2022년 2조2840억원 △2023년 2조1764억원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 3조5573억원으로 63% 급증했다. 올해는 신약 짐펜트라 미국 출시로 인한 신규 매출 증가로 매출 5조원 달성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서 회장은 짐펜트라, 램시마, 11개 바이오시밀러 허가 획득으로 신규 매출을 창출, 올해 매출 5조, 2027년 매출 10조까지 자신하고 있다.
글로벌 50위권 제약사의 공통점은 모두 블록버스터 제품을 개발 및 탄생시키면서 추진력을 얻었고, 추가 제품 개발로 상위 제약사로 도약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셀트리온의 성장 모델이기도 하다. 이미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최초로 램시마 연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하면서 글로벌 블록버스터 제품을 탄생시켰다. 여기에 신약 짐펜트라는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 총매출 1조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두 개의 블록버스터 제품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램시마와 짐펜트라를 비롯해 다수 바이오시밀러와 향후 CDMO 및 ADC 신약개발 사업을 통한 신규 수익은 매출 10조원 시대를 가속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50위 제약사가 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50위권 기업은 대부분 역사가 오래된 기업인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이보다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낸 것이다. K바이오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M&A 등으로 통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30대, 더 나아가 10대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도 결과물에만 집중하지 말고, 제약바이오 전방위 생태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