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과실"...대한한공 801편 괌 추락 사고[그해 오늘]

by이준혁 기자
2023.08.06 00:02:22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1997년 8월 6일 새벽 김포국제공항을 떠나 미국 괌 아가나국제공항을 향하던 항공기에는 “탑승하고 계신 대한항공 801편은 5분 후 괌 아가나공항에 착륙합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휴양지 도착을 앞둔 설렘은 곧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만다.

이날 사고는 오후 8시 22분 김포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괌에 도착해 착륙을 시도하던 중 벌어졌다. 이 사고로 승객 214명과 승무원 14명을 합쳐 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고, 26명이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큰 부상을 입게 됐다. 탑승객 중 9명을 제외한 245명이 한인 및 한국인이었다.

조종사 판단 실수 등과 착륙 유도 장치인 활공각 지시기(글라이드 슬롭)의 허위 신호 등이 사고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태풍의 영향으로 내리고 있던 폭우도 야속하게 사고를 부추겼다.

1997년 8월 6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미국 괌 아가나국제공항에서 착륙 도중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운항은 박용철 기장, 송경호 부기장, 남석훈 항공기관사가 맡았다. 이들은 착륙에 앞서 현지 관제소로부터 글라이드 슬롭이 고장나 수리하고 있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비구름을 빠져나온 항공기는 “괌 공항 6번 활주로로 내려가겠다고” 현지 관제소에 보고했다. 이에 관제소는 “활주로 6번 왼쪽으로 계기 착륙 방식의 접근을 허가한다”면서 “글라이드 슬롭은 사용할 수 없다”고 재차 환기시켰다.

하지만 충돌 7분여 전 갑자기 비행기에 글라이드 슬롭 신호가 잡히면서 박 기장 등은 혼란에 빠졌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활주로 식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도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동시에 규정 고도를 무시한 이유였다.

글라이드 슬롭 신호를 믿은 조종사들은 계속 하강하면 활주로가 보일 거라 판단해 순식간에 고도를 내렸다. 이후에도 박 기장은 착륙 바퀴를 내리는 등 정상적인 착륙 절차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대지 접근 경보 장치(GPWS)는 지면과 가깝다며 여러 차례 위험 신호를 보냈다. 특히 착륙 결심 최저고도를 알려주는 미니멈 경보가 울렸을 때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기에 무조건 착륙을 중지하고 재상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재상승을 지시하는 “Go Around(복행)”가 박 기장 입 밖으로 나온 시점은 충돌 3여초 직전이었다. 진작부터 착륙을 포기하자는 송 부기장의 말을 무시하면서다.

그렇게 항공기는 괌 아가나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4.8㎞ 떨어진 니미츠 힐 중턱 밀림에 추락해 항공유와 460ℓ가 넘는 면세주가 흘러나오면서 8시간 넘게 타올라 많은 사상자를 냈다.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 잔해에서 발견된 승무원의 메모. (사진=연합뉴스)
여름 휴가철 가족 단위로 탑승한 경우가 많아서 일가족 전원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유명 성우 장세준·정경애씨 부부와 신기하 의원 부부도 이 사고로 사망했다. 구조된 한 생존자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정밀 조사결과 조종 미숙과 기체 결함 등으로 사고 원인은 좁혀졌다. 라디오 등 전자제품에서 허위 신호가 감지되면서 유도장치가 오작동 해 조종사의 착각 등이 겹치면서 결국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모두 공군 조종장교 출신인 조종사들 사이에 위계질서로 인해 의사결정에 차질이 있었다는 지적도 따랐다.

약 2년간 조사한 끝에 미국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악천후 상태에서 안전장치를 믿은 조종사 실수와 안전장치의 오작동, 미국연방항공국의 관제시설 관리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났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조종사 과실보다 미국 측의 책임이 더 크다고 나타나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선 부상자와 유가족들이 승소했다.

사고 이후 대한항공은 1998년 4월부터 괌 노선을 폐지했다가 2001년 12월 운항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