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만에 재회한 친딸…생모 가족 전재산 가로챘다[그해 오늘]

by한광범 기자
2023.04.27 00:01:00

경제적으로 어렵던 생모 가족 소유 아파트·임야 빼돌려
글 모르던 생모 속여 위임장·증여계약 위조…인감도 받아
수사 와중에도 "합법적 증여다" 뻔뻔→법원마저 "교활"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4월의 어느 날. 서울서부지법의 한 형사법정. 당시 43세 여성 A씨가 피고인석에 여유있는 모습으로 앉아있다. 생모 가족의 전 재산을 가로챘다는 혐의를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A씨는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A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낭독하는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 재판부가 1심 무죄 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소사실 전체를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법원마저 “교활하다”고 질타한 이 여성의 범행 수법은 도대체 어땠을까.

(그래픽=뉴시스)
A씨는 1971년 혼외자로 태어났다. 친모 B씨는 출산 직후 집을 나가 A씨는 친모 없이 자랐다. 20대에 결혼한 A씨는 1997년 10월께 남편의 노력 덕분에 친모 B씨와 재회했다.

B씨는 이미 다른 남성 C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B씨는 C씨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과거 출산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B씨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친딸 A씨를 수양딸이라고 속이며 교류를 이어갔다.

A씨는 이후 B씨 집에 자주 드나들며 B씨 가족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B씨 부부는 2004~2006년 사이 서울에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경기도 한 지역에 임야를 구입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B씨 부부의 전재산이었다.

B씨 가족은 분양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를 임대 주고 본인들은 더 싼 집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환경미화원인 B씨와 중소기업 직원인 B씨 부부 자녀의 적은 월급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A씨는 이런 B씨 가족의 재산을 가로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1년 3월 B씨 부부 집에 몰래 들어가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훔쳤다. 그는 친모 B씨가 한글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집으로 친모를 부른 후 ‘전 재산을 A씨에게 주기로 증서로 서약한다’는 내용의 무상증여서를 쓰게 했다. B씨가 자필로 쓴 부분은 ‘위 내용이 사실관계임을 증명하고 모두 동의합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한글을 몰랐던 B씨는 호적관계 정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A씨의 말을 믿고, A씨가 미리 연필로 써놓은 글씨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따라 쓰게 했다. 이후 B씨에게 B씨 도장과 C씨 인감도장을 받아 날인한 후, 주민센터로 데리고 가 인감증명서까지 발급받았다. 그리고 호적정리에 필요하다며 C씨의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받아갔다.

A씨는 이렇게 조작한 각서를 이용해, 법무사 사무실에서 위조 증여계약서를 만든 후 미리 소지하고 있던 C씨의 인감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위조된 계약서를 이용해 법원에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해 실제 아파트와 임야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A씨는 향후 소유권 이전 사실이 발각될 때를 대비해 ‘위임장’까지 조작했다. 그는 C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큰아버지와의 상속 소송과 관련해 필요하다”는 핑계로 C씨에게 위임장을 쓰도록 했고, 이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 뒀다. 그리고 받아놓은 위임장 여백에 ‘전재산 증여와 관련 있다’는 내용을 추가로 기재해 넣는 방식으로 위임장을 조작했다.



이 같이 대담한 A씨의 행각은 약 4개월 후인 2011년 7월 재산세 고지서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C씨가 재산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각됐다. C씨가 재산세에 대해 구청에 문의하자, 구청 측이 아파트와 임야의 이전등기 사실을 알려줬고 C씨가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이를 확인한 것.

C씨는 B씨에게 이를 알리고 함께 A씨에게 경위를 추궁했다. 하지만 A씨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B씨에게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B씨는 결국 그때서야 남편 C씨에게 A씨가 친딸이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B씨 부부는 A씨를 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A씨는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아파트와 임야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B씨 부부의 승낙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C씨가 위임장을 작성하는 영상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C씨는 “친딸도 아닌 A씨에게 전재산을 증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A씨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수사기관은 B씨 부부와의 대질까지 했으나 A씨는 끝까지 ‘합당하게 증여받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검찰은 A씨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절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법정에서도 위임장 등을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모든 재산을 증여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상증여서에 간인이 돼 있고 증여서를 작성하거나 들고 있는 모습, 위임장을 작성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는 만큼 B씨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이 유죄로 인정할 증거가 충분함에도 A씨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만을 인정하고 유죄 부합 증거의 신빙성을 배척했다”며 즉각 항소했다.

2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월을 선고한 후 법정구속했다. 2심 재판부는 “C씨의 경우 A씨가 B씨의 친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이들 부부가 전 재산을 자신들의 딸이 아닌 B씨에게 증여할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받아낸 위임장의 경우도 A씨가 사용 용도를 숨기고 속여 받아낸 것이고, 하단에 작성된 내용 역시 A씨가 임의로 기재한 것이 명백하며 무상증여서 역시 정상적으로 B씨 부부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서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결론 냈다.

2심 재판부는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찰청의 필적 감정서를 근거로 “무상증여서의 필적은 A씨가 연필로 작성해 온 용지에 쓰인 글자를 그대로 따라 적었다는 A씨의 일관된 진술과 일치한다”며 “B씨를 속여 작성하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위임장과 무상증여 작성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관련해서도 “B씨 부부가 재산을 주겠다고 여러번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A씨가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두려 했다는 자체가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범행수법이 교활하고 계획적이며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그럼에도 A씨는 줄곧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소유권이전등기 회복 등의 피해변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친모 B씨와 C씨가 줄곧 A씨에 대한 엄한 처벌의사를 표시하고 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