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본시장의 봉달이를 열망하며
by류성 기자
2014.03.21 01:00:00
나는 마라토너 봉달이 이봉주를 좋아한다. 그는 41세에 은퇴하기까지 41번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 경험을 소재로 ‘봉달이의 4141’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한번도 어렵다는 42킬로 완주를 그는 마흔 한번이나 되풀이한 것이다. 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고통과 흘린 눈물의 질량은 아마도 태산같이 무겁지 않을까.
그는 짝발(왼발 253.9㎜, 오른발 249.5㎜)과 평발이라는 최악의 조건과 100미터 달리기 14초의 타고난 둔재로 천재들을 뛰어 넘었던 노력의 화신이었다. 이런 그는 곧잘 황영조와 비교되곤 했다. 황영조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종목에서 금메달을 따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었다면 그는 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었다. 물론 그도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금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뒤안길에서도 그는 묵묵히 1등보다 완주를 목표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이런 봉달이의 마라톤 인생은 장기투자자의 투자인생과 닮은꼴이다. 저 유명한 워렌 버핏(Warren Buffet)의 장기투자 역시 고통과 눈물의 소산임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람들은 현재의 성공이 과거의 지독한 고통과 대칭되어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최신 유행에서 벗어난 소외주를 주위의 질타와 멸시를 감내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며 소신껏 장기보유하기란, 웬만한 내공과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단기욕심과 주위 눈총을 못 견디고 유행에 민감한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투자로 돈을 벌지 못한다.
장기투자는 또한 ‘만시간의 법칙’과도 닮았다. 한 분야에 만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비로서 해당분야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다. 즉 하루 서너 시간씩 8년 가까이를 투자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계산이다. 일견 쉽게 보이지만 이 또한 형설지공에 비견되는 각고의 노력을 요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누가 마다하랴. 그러나 그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다양한 유혹들을 뿌리치고 수 많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승화시킬 수 있는 내공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수다한 걸림돌들에 넘어져 전문가가 되지 못한다.
주식시장을 한번 보자. 주가는 장단기 정보 둘 다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시장은 단기정보를 추종하는 경향성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단기투자에 대한 시장 구조적 지원체계가 날로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다양한 뉴스와 주식시장 전체가 사람들의 손바닥에 놓이게 됐다. 인덱스 투자, ETF펀드, 각종 파생상품 등이 등장하면서 사실상 투자자들의 오너십은 실종됐다. 주식을 매개로 한 투자자와 기업간의 관계가 거의 끊어진 까닭이다.
더욱이 국내는 주요 해외국가들과 비교하여 주식 배당수익률이 매우 낮다. 최근 5년간 주요 18개국의 평균 배당수익율이 3.9%인데 한국은 1.5%에도 못 미친다. 주요국 투자자 주식평균보유기간도 가장 낮다. 싱가폴, 홍콩이 각각 2.7년, 2.3년인데 한국은 0.7년에 불과하다. 주식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도 없다. 이 판이니 단기투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떠받들어 진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투기적인 시장 중 하나가 됐다.
단기투자가 기승을 부리면 자본시장은 그 본연의 순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즉 시장은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s)나 정치사회환경적 거시 변수들이 가져다 줄 회복 불가능한 결과들에 대해 과소평가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그저 단기수익의 누적총합만을 키워가려고 혈안들이 된다. 그것이 최선의 투자인줄 착각한다. 단기투자의 찬양론자들은 단기국면의 결과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전제를 까는데 실제로는 각 단기국면의 결과는 상호 긴밀한 의존적 관계를 갖는다. 투자란 열 번을 잘하다가도 한 번의 헛발질로 그 이전 열 번의 성공들을 무위로 돌릴 때가 다반사인 까닭이다.
또한 투자의 단기화는 기업경영의 단기화를 초래한다. 단기성과에 대한 압력은 경영자의 장기자본투자를 가로막는다. 사람을 키우고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을 모색하며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환경친화적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것들은 모조리 비용유발요인이기에 단기성과의 적이며 제약요소가 된다. 이것을 용기 있게 추진할 월급쟁이 경영자들은 거의 없다. 한 해외조사결과에 따르면 80% 이상의 CFO들은 단기수익에 대한 투자자들의 요구로 인해 경제적 가치 창출 시도를 주저하게 된다고 응답했다.
나는 한국 자본시장에도 봉달이 이봉주와 같은 투자기관과 펀드 매니저가 등장하기를 열망한다. 세간의 관심 밖에서도 묵묵히 마라톤 레이스를 감행하는 인내의 투자자들을 기다린다. 짝발과 평발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 조건을 탓하지 않고 천재들을 뛰어넘은 불사조와 같은 봉달이 투자자, 매 킬로의 성과는 부족할지언정 결국 42킬로의 성과로 승부하는 피와 땀의 투자자들이 나타나야 한국 자본시장도, 한국경제도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