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나는 모르는데 안 알아준다"..녹취록 채택 파장

by김현아 기자
2013.07.03 00:57:58

김원홍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억울함 호소..김준홍 단독범행 언급
재판부, 유력 증거로는 안 봐..9일 녹취록 신문 진행
SK 펀드 정상성도 드러나..재판부, 최 회장 질책 의심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회삿돈 450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003600)그룹 회장이 이 돈을 송금받은 김원홍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안 알아준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최 회장은 SK계열사들이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베넥스인베스트먼트가 구상 중이던 펀드 결성 전에 돈을 선입금하게 한 뒤, 김준홍 전 베넥스 사장을 통해 이 중 450억 원을 김원홍 씨(최태원 회장 형제 선물옵션투자관리인·전 SK해운 고문)에게 불법 송금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2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는 변호인이 최근 제출한 ▲김원홍 씨(전 SK해운고문, 최 회장 형제 선물옵션투자관리인)와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원홍 씨와 최 회장 ▲김원홍 씨와 최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사이의 전화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탄핵 증거로 채택했다. 녹취록은 김원홍 씨가 녹음해 변호인을 통해 최 회장 측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부장판사가 밝힌 녹취록에 따르면 김원홍 씨는 “최 회장은 죄가 없으니까 그냥 사실대로 하자”는 말을 했고, 최 회장은 “나는 (불법송금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안 알아준다”고 호소했다.

김원홍 씨와 김준홍 전 사장과의 대화에서 김원홍 씨는 “선지급에 대한 오해가 있다. 부회장까지 끌어들이면 안 된다”고 언급했으며, 최재원 부회장과의 통화에서는 “가가(김준홍) 팩트대로 하면 지가 죽으니 그리한다”고 밝혀, 이 사건이 SK계열사들로부터 펀드를 유치하고자 하는 김준홍 씨의 단독범행 가능성이 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문 부장 판사는 “김원홍 씨가 어떻게 녹음한 것인지 등을 밝히지 않는 이상 (녹취록을 바탕으로) 재판하면 뭐가 웃을 일이 될 수 있다”며 “다만, 탄핵 증거는 명확한 요건이 있는 것은 아니니 증거로 채택한다”고 말했다.

또 “김원홍과 최태원 피고인의 대화 내용은 검사에게 오히려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녹취록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검찰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9일 오전 10시 열리는 다음 번 공판에서는 녹취록의 대화 내용에 대한 날 선 공방이 예상된다.

이날 공판에선 SK텔레콤(017670), SK C&C(034730)와 달리 최재원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던 SK E&S에서는 선지급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과 함께, 최태원 회장이 공동대표이사로 있던 SK에너지(096770)는 펀드 입금 이후 통장과 도장을 주지 않는 등 최 회장 형제가 개인 재산 증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계열사 펀드 구성을 주도했다는 검찰 측 논리에 반하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10년 세무조사 당시 최 회장이 펀드 계정에서 돈이 인출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2011년 글로웍스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온 김준홍 전 사장에게 펀드 자금 유용을 질책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