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운동권 총리`..10년간 與선거운동 총괄

by조선일보 기자
2004.06.09 01:58:53

[조선일보 제공] 이해찬 국무총리 후보는 현역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꼽힌다. 52세에 벌써 서울 지역구(관악을) 의원 5선을 기록 중이고, 교육부 장관과 서울시 정무 부시장 등을 지냈다. 또 96년 15대 총선 때 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선거기획본부 부본부장,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 민주당 중앙선대위 기획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0여년 동안 현 여권의 선거 기획 업무를 총괄해 왔다. 그만큼 현 여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획력과 행정력, 조직 장악력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서울의 봄’으로 불리던 1980년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를 했고, 이 일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10년 형을 선고받아 2년 6개월 복역했다. 1952년 충남 청양 출신으로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이 후보는 72년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후,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이런 학생·재야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88년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했고,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많이 신임을 받는 젊은 정치인으로 성장해 갔다. 이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3대 국회에서 초선으로 만나면서 라고 한다. 노 대통령과 이 후보, 현재 구속 중인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은 13대 국회 노동위의 ‘3총사’로 불렸다. 또 이 후보가 91년 한때 당내 주류를 형성한 동교동계에 반발, 잠시 탈당했다 92년 총선을 앞두고 복당하자 당시 당 대변인이었던 노 대통령이 당 지도부에 이 후보 공천을 주도록 적극 설득했다는 일화도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이 후보를 선대위 기획본부장으로 임명하면서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화려한 경력의 이면에는 그늘도 적지 않다. 이 후보는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서 내놓은 입시개혁안이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후보는 당시 “성적 위주 선발을 지양하고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며 의욕적으로 교육·입시 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설화(舌禍)도 적지 않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8월 대선을 앞두고 “국회 대(對)정부 질문을 앞두고 검찰측이 병풍 유도 발언을 요청했다”고 발언, 이 문제로 50만원의 과태료를 받기도 했다. 또 작년 11월 신당 창당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대부(代父)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구 9석을 30억원에 팔았다”고 말해 파문을 낳기도 했다. 이 후보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서울대학교 동기동창이며, 김근태 원내대표는 ‘재야운동권 선배’로 깍듯이 따르는 사이다. 이 후보는 김대중 정부 시절 당내 개혁 그룹보다는 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쪽에 섰다. 또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는 ‘통합신당’을 주장하면서 막판까지 망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