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자구안놓고 혼란 가중시키는 현대의 의도는?

by문주용 기자
2000.11.07 01:45:20

현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건설의 자구계획을 가지고 위험한 "말장난"을 하고 있다, 마치 성냥갑을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하루에도 여러차례 계획에 새로운 계획을 덮어씌우고 하는 혼란이 마지막 고비를 앞둔 격렬한 떨림일수도 있지만 시장의 불안을 끝없이 증폭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한 까닭이다. 6일 현대 정몽헌 아산회장의 사재출연 얘기가 그렇다. 건설은 이미 오전부터 정 회장과 전현직 임직원들의 "회사살리기" 방침을 정해놓은 채 "발표"를 할 지, 일부 언론에 흘릴지를 놓고 저울질했다. 특히 채권단과 정부가 법정관리, 출자전환 등으로 경영권을 노골적으로 위협하자 "출자전환 거부" 방침을 흘려놓고, 건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듯한 정 회장의 "굳은 의지"라며 오후일찍 사재 출연의사를 밝힘으로써 출자전환 국면을 피하려 했다는 인상이다. 이어 3122만평 규모의 서산농장을 정부가 아닌, 일반 또는 제3자에 매각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보도됐다. 아직 최고경영자의 사인도 나지 않은 사안인데도 원매자가 많다는 "희망적인" 이유로 섣불리 대외에 공개했다. 정부가 제시한 가격보다 높게 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역시 정부에 역으로 흥정하는 모양새처럼 보인다. 저녁 7시께 발표된 현대상선의 중공업·전자 주식 매각은 혼란상의 극치였다. 5514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오후일찍 발표했던 정 회장 사재 출연은 유야무야로 만들었다. 물론 현대 관계자는 "이 두가지 안 모두 검토중인 안"이라며 "유효하다"고 밝히긴 했다. 일부 채권단에선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는데 이 반응이 보도되자 현대는 당황했다. 당황한 이유는 이 안이 갖고 있는 "알찬" 내용 때문에 반응이 너무 즉각적으로 나온 것도 한 이유였지만, 이 주식을 갖고 있는 상선측과 긴밀한 조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사실 이 점은 현재로선 확인하기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건설이나 구조조정위원회가 남(상선)의 자산을 갖고 "매각 계획"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 특히 최근 체면이 말이 아닌 건설에 비해 상선의 그룹내 위치는 갈수록 상승세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도 납득이 안되는 건 마찬가지. 정 회장이 상선에 대해 확고한 지배력을 갖고 있는데다 김충식 상선사장은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급부상하는 인물로, 단순히 상선 입장만 고려해 건설지원 여부를 결정할 처지가 아닌 탓이다. 현대발표후 상선은 격렬한 모습으로 반발했다. 매각할 계획도, 매각 금액을 건설에 지원할 계획도 없다는 강력한 항의였다. 통상 "보도자료"도 아닌 "알려드립니다"라는 생경한 자료형식으로 이같은 내용을 발표한 현대의 무리수를 보면서 결국 현대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아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 회장의 사재출자, 서산농장 일반 매각, 상선의 중공업·전자 주식 매각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린 조치는 자구를 위한 자신들의 노력을 과시하려는 연막인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가 노리는 상황은 우선 채권단과 정부의 기대수준을 "검토하고 있는 안"내에서 묶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데 있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구를 위해 자신들이 검토하고 있다는 안이 그룹내부의 이유에서나 채권단의 뜻에 무력해질 경우다. 이 때는 적절한 명분을 축적한 현대가 강력한 대항 카드를 내밀수도 있다. 건설 관계자는 "현재 발표된 것 외에 자구안 내용은 더 있다"고 말해 여운을 넘겼다. "건설 포기"도 그중 가장 폭발력이 큰 검토사항일 것이다. 현대의 이런 구체적인 행동은 한편으로 채권단과의 자구안 합의가 임박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막판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도들이라면 실망이다. 입으로만 이런 저런 자구안이 있다고 하면서 채권단 의중을 떠볼 여유가 현대에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채권단과의 성실한 협의에 신경을 집중하며 자구계획을 "입"이 아닌 "온몸"으로 실천하기를 시장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