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범용 관광·여행 시대의 거버넌스 혁신
by이선우 기자
2025.03.31 00:02:00
[이데일리 이선우 관광·마이스 전문기자] 인공지능(AI)만큼 극적인 이슈몰이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관광·여행도 끊임없이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미 대상과 범위는 전 세대와 전 세계로 넓어졌고, 분야나 목적에 따라 형태와 종류도 세분화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산업, 교육, 의료, 생태, 안보, 농어촌, 미식, 치유, 럭셔리, 비즈니스 등 관광·여행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급기야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고, 반려동물이 여행 동반자 자리를 꿰차는 시대까지 이르렀다.
관광·여행은 기업 경영과 정부·지자체 행정에서도 요긴한 비즈니스와 정책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기업에선 관광·여행을 비즈니스 목적 출장부터 직원의 교육·연수, 사기 진작하고 성과를 보상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지자체에선 관광·여행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 정책 그리고 급격히 줄어든 지역 인구의 빈자리를 채울 생활 인구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야흐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는 ‘범용(汎用) 관광의 시대’인 것이다.
범용화로 늘어난 수요만큼 시장은 커졌지만, 그만큼 이해관계 역시 복잡해졌다. 특히 관련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체계인 관광 거버넌스는 범용화로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부의 정책 거버넌스가 2008년 금융 위기를 시작으로 이전보다 더 다차원적이고 복잡다단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원활하게 작동하는 정부의 특징’이라는 부제가 달린 100쪽 분량 보고서에는 전통적 구조와 방식의 정책 거버넌스로는 급변하는 정세와 기술 발달 등 대외 환경에 발 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담겼다.
갈수록 높아지는 불확실성,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정책이 일관성, 효율성을 갖추려면 범정부 차원의 확대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OECD는 지난해 전 세계 50개국 관광 산업 동향과 정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엔데믹 전환 이후 일부 국가에서 관광·여행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며, 효율적이고 일관된 정책 집행을 위한 거버넌스의 변화, 개혁을 재차 주문했다.
범용 관광 시대에 필요한 건 나무가 아닌 전체 숲을 볼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과 기능이다. 콘텐츠 개발과 관광객 유치(문화체육관광부), 항공·철도·선박 등 교통망 관리(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 비자 심사와 발급(외교부), 입출국 심사(법무부) 등 각기 정책 목표가 다른 부처로 기능이 분산된 수평적 구조의 거버넌스라면 더욱 그렇다. 공유숙박, K-ETA(전자여행허가제), 관광·숙박세, 오픈(내국인 출입) 카지노 등 관광·여행 시장 활성화와 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이슈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원인이 거버넌스의 태생적, 구조적 한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문제다.
일 년에 한두 번 숙제하듯 여는 국가관광전략회의도 거버넌스 변화와 개혁 차원에서 ‘격상’, ‘상설화’를 고민해야 한다. 범국가적 관광 전략을 짜는 회의가 연관 부처들이 뜨문뜨문 모여 각자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만 나열하는 ‘백화점식’ 이벤트가 돼선 곤란하다. 지금처럼 부처 간 칸막이가 여전한 거시적인 통합 거버넌스의 부재 상황에선 ‘무비자 입국’ 허용과 같은 시장의 호재도 효과는커녕 재정과 행정력만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