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텍스, 에비타스와 라이선스 계약…툴젠이 얻을 반사이익은
by김새미 기자
2023.12.20 09:04:29
특허 분쟁 종료 전 1억달러 규모 라이선스 계약 체결한 배경은?
툴젠, 협상 대상으로 발명자뿐 아니라 CRISPR 신약개발사까지 고려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미국 제약사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 이하 버텍스)와 에디타스메디슨(Editas Medicine, 이하 에디타스)이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해당 기술의 원천 특허를 둘러싸고 다투고 있던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와 CVC 그룹이 특허 분쟁 종료 전에 합의에 도달한 셈이다. 시장에선 툴젠(199800)도 특허 분쟁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버텍스는 에디타스와 최대 1억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CRISPR/Cas9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은 총 계약 규모의 절반인 5000만달러(약 650억원)에 달하며, 나머지 5000만달러는 미공개 옵션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에디타스는 추가적으로 2034년까지 1000만~4000만달러(약 130억원~520억원)의 연간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다. 에디타스는 버텍스에서 받은 금액 중 두자릿수 중반의 비율을 원천기술을 제공한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산하 브로드연구소에 지불해야 한다.
버텍스가 이번 계약을 체결한 데에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겸상적혈구질환(SCD) 유전자가위 치료제 ‘카스게비(Casgevy, 미국 제품명 엑사셀)’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버텍스는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와 개발한 카스게비의 본격적인 시판에 앞서 특허 분쟁 리스크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앞서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CVC 그룹의 크리스퍼 카스9 원천기술 특허를 사와 유전자가위 치료제를 개발했다. 반면 에디타스는 브로드연구소의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CVC 그룹과 브로드연구소는 특허 분쟁을 진행 중이다.
이번 계약은 CVC 그룹과 브로드연구소의 특허 분쟁이 종료하기 전에 합의를 본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툴젠과도 빠르게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툴젠은 CRISPR 유전자가위를 진핵세포에서 작동하는 것을 증명한 특허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출원하고, 세계 최초로 사업화한 업체다. 툴젠은 현재 CVC 그룹, 브로드연구소와 각각 저촉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툴젠의 특허 출원일이 2012년 10월로 가장 앞서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브로드연구소(2012년 12월), CVC 그룹(2013년 1월) 순이다.
| 글로벌 CRISPR 특허 권리 현황 (자료=툴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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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촉심사가 개시되면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각 당사자에게 ‘선순위자(Senior Party)’와 ‘후순위자(Junior Party)’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발명일이 객관적으로 앞서있는 당사자에게 선순위자 지위를 부여하며, 후순위자는 자신의 발명일이 선순위자보다 앞선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2020년 12월에 개시된 CVC 그룹, 브로드연구소와 각각 진행하는 저촉심사에서 툴젠은 선순위자 지위를 인정받고 지난해 9월 저촉심사 1단계(Motion phase)에서는 선순위자 지위를 확정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툴젠이 후순위자인 브로드연구소와 CVC 그룹에 비해 높은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툴젠의 주가가 장중 한때 상한가(7만6400원)에 도달한 것도 이러한 기대감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툴젠 역시 CRISPR 원천기술 관련 특허에 대한 주요 발명자 그룹 간 협상이 진행될 것을 예상해왔다. 툴젠은 특허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지만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기보다는 합의를 통해 빠르게 수익을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에디타스도 이번 합의를 통해 2026년까지 기업 운영에 문제가 없을 만큼의 현금 여력을 확보하게 됐다.
툴젠 관계자는 “미국에서 대부분의 특허 분쟁은 판결 전에 협상으로 타결된다”며 “저촉심사의 당사자들은 장기간 비용을 소모하며 대법원 판단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협상 조건을 가늠해 합리적인 라이선스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회사 측은 이번 라이선스 계약 규모와 금액이 투명하게 공개됐다는 점에서 향후 협상을 진행할 때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툴젠 관계자는 “이번에 라이선스 계약의 금액이 공개된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며 “레퍼런스가 생겼다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툴젠은 라이선스 협상 대상으로 브로드연구소, CVC 그룹뿐 아니라 CRISPR/Cas9 유전자가위 치료제 임상을 진행 중인 신약개발사까지 확장해 고려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CRISPR/Cas9 유전자가위 치료제 임상등록건수는 76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툴젠 관계자는 “해당 기술로 신약 개발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도 테이블에 올려놓기 위해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툴젠은 주요 국가 9개국에서 CRISPR/Cas9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를 등록한 상태다.
한편 호주 연방법원은 지난 8월 미국 임시 특허 출원을 근거로 한 우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아 무효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결정은 툴젠이 호주에 등록한 특허 2개 중 1개에 관한 건이다. 이에 툴젠은 반박 자료를 제출, 내년 3월에 구두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툴젠의 호주 특허는 둘 다 등록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툴젠 관계자는 “만약 문제가 된다면 특허의 청구 범위를 줄여서 (호주) 특허를 살릴 수도 있다”며 “각국마다 규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호주 특허가 무효화된다고 해서 미국 특허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순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