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어 테라퓨틱스사 파산...K-디지털치료제엔 절호 기회

by송영두 기자
2023.04.19 09:05:15

국내도 보험 급여 문제, 올해 타결 가능성
급여 해결 및 정부 지원시 국내 기업 글로벌 도약 유리

[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글로벌 디지털치료제 기업 페어 테라퓨틱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미국 법원에 파산신청을 함에 따라 나스닥으로부터 상장폐지도 통보받았다.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이끌었던 대표 기업이기에 국내 업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업계는 페어사의 파산은 보험 급여 적용 문제와 판매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사태가 국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연내 어떤 식으로든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보다 국내 환경이 훨씬 유리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3일 디지털치료제(DTx)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2013년 설립된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가 최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코리 맥켄 페어 테라퓨틱스 CEO를 비롯해 직원 92%를 해고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이다. 페어사의 파산은 실적 악화이지만,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끼쳤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페어사는 2017년 약물중독 디지털치료제 리셋(reSET)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이후 2개 제품이 추가로 FDA 허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디지털치료제 업계를 리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1년에는 스팩합병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는데, 당시 기업가치는 10억60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보험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고, 제품 판매도 미진해 매년 쌓이는 적자를 견뎌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페어사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는 디지털치료제 기업에 대한 투자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페어사가 개발한 디지털치료제가 미국 내 모든 사보험과 공보험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나눠지면서 대중적으로 인정을 못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며 “미국은 민간보험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고, 공보험은 공보험대로 또 복잡하다. 또 주마다 법도 다르다. 페어사가 몇 개 주를 뚫었지만, 판매량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자가 페어사 치료제를 처방받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허가 된 주에 가서 해당 치료제를 처방하는 의사를 만나야지만 가능한 사업구조”라고 설명했다. 즉 보험사가 요구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허들이 존재하는 접근성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불면증 디지털치료제 에임메드 솜즈.(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국내에서 디지털치료제는 최근 가장 뜨거운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국내 첫 디지털치료제까지 탄생하면서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바이오, 헬스케어 투심 한파에도 꾸준히 투자 유치를 했던 곳이 바로 디지털치료제 섹터다. 실제로 이모코그는 지난해 녹십자(006280), 카카오(035720) 등으로부터 150억원을 유치했다. 하이는 동화약품(000020)으로부터 75억원을 투자받았다. 국내 2호 디지털치료제 허가가 유력한 웰트는 지난해 60억원, 올해 50억원 등 110억원을 유치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보험 급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디지털치료제 분야가 도태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기업 및 산업 성장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보험 급여 및 수가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면 페어사와 사례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치료제 기업 A 대표는 “디지털치료제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효과를 입증하더라도 환자에게 처방했을 때 충분한 수가를 받지 못한다면 페어사 같은 사례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디지털치료제 업계는 정부 측과 수가 등 보험 급여 문제를 꽤 오랫동안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허가된 제품이 없이 이뤄지면서 논의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지난 2월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디지털치료제 솜즈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으면서, 물밑에서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낮은 단가를 둘러싼 인식 차이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A 대표는 “디지털치료제는 소프트웨어에 속한다. 그동안 IT 산업군에서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 평가가 낮았다”며 “최근 디지털치료제도 보험 수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소프트웨어 가치를 낮게 책정하는 IT 산업 문제에 대한 고찰없이 수가 논의를 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정부 쪽과 수가 문제를 논의 중이다. 수가 문제는 디지털치료제 업계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디지털치료제 판매 채널은 소비자 판매, 비급여, 급여 등 크게 3가지로 나뉠수 있다. 이 중 처방용 치료제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보험 체계에서 경제성 대비 효과성을 검증해서 보험 급여 수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당연히 (수가가)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보험 등 영역에서 디지털치료제가 인정받는다면 관련된 여러 제품도 들어올 수 있다. 훨씬 큰 시장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사보험과 공보험이 뒤엉켜 있어 굉장히 복잡한 시장이다. 반면 국내는 공보험 하나로 이뤄진 시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험 급여 관련된 부분에서 결단을 내리고, 산업 생태계를 위한 지원을 한다면 오히려 국내 기업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강 대표는 “에임메드 등 여러 디지털 치료제가 혁신 의료기기 통합 심사제도에 들어가 있다. 해당 제도를 통해서 임시 등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임시 등재라는 것은 임시라는 단서가 달리지만 보험 급여 수가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올해 안에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임시 등재를 통해 디지털 치료제 보험 급여 적용 사례가 나오면 솜즈에 이어 연내 디지털치료제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웰트, 라이프시맨틱스(347700) 등에 큰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