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말살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그해 오늘]
by이연호 기자
2023.03.01 00:03:00
1995년 삼일절, 일제 수탈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
문민정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일환으로 해체 결정
같은 해 광복절 중앙돔 첨탑 분리로 시작해 1996년 11월 모두 철거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선포하는 축제를 거행하게 됐음을 하늘과 땅에 고하나이다”
| 1995년 3월 1일 구 조선총독부 앞 광장에서 열린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 철거 선포식 무대 뒤편 위에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첨탑이 보인다. 사진=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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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1일. 지금의 서울 광화문에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축제가 펼쳐졌다. 바로 그 자리에 70년 간이나 버티고 서 있던 ‘한민족 말살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 광장에서 열린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 축제’에서 당시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오늘 삼일절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의 시발점으로 삼는다”고 천명했다. 흥겨운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무수히 많은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저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로 축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구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를 결정했고 이날 선포식을 거행했다.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줄곧 추진된 일이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번번이 좌초된 일이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는 1916년 착공해 10년 간의 공사 끝에 1926년 완성됐다. 조선 제1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부지 선정 시 원래 계획이었던 현 서울시청 자리 대신 조선과 대한제국의 심장부였던 경복궁 안을 밀어붙였다. 일제 통치를 선전하고 조선 왕조를 욕보여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 건물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던 궁을 보지 못하도록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경복궁을 다 가릴 정도로 압도적 규모로 지어졌다. 더욱이 공사 과정에서 광화문을 철거하고 경복궁 전각 6806칸 중 4000여 칸을 경매로 매각해 총독부 건물의 건축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당초 예상했던 비용보다 두 배 이상 더 들여 완성한 조선총독부 건물은 당시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통틀어 가장 큰 건축물로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조선총독부는 우리 민족에겐 치욕과 상처만 안겨 준 공간이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건물 지하실 방마다 두께 15cm의 육중한 철문을 달고 방음 시설을 갖춘 고문실까지 마련했다. 우리 민족 입장에선 뼈아픈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대표적인 ‘네거티브 문화재’였던 셈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해방 후 미군정이 접수해 사용했다. 그때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 ‘캐피탈 홀(Capital Hall)’로 우리는 이를 ‘중앙청’으로 직역해 이 이름을 수십년 간 사용했다. 1982년까지 정부 청사로 사용됐으며 내부 보수를 거쳐 1986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건물 철거 선포식 이후 실제 해체 작업은 같은 해 8월 15일에 시작됐다. 당시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은 구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돔 첨탑 분리에 앞서, 해방 50년 만에 이뤄지는 일제 상징 제거를 호국 영령들에게 고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고유문(告由文)을 낭독했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 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해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 작업과 새 문화 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이후 커다란 기중기가 조선총독부 건물 첨탑 윗부분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자 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수백 발의 폭죽이 하늘로 솟구쳤다. 첨탑이 기중기에 매달려 지상으로 옮겨지는 동안 광화문 앞 경축 행사장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다시 찾은 빛>이 장엄히 울려 퍼지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이후 철거 작업은 1996년 11월 전체 건물을 폭파하는 공법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앞서 1995년 3월 1일 우리 정부가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공식 선포하자 일본 정부는 이전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자신들이 통째로 이 건물을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으며, 철거 전에 이 건물을 마지막으로 보려는 일본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철거된 첨탑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부재들은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의 야외에 조성된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 공원’으로 옮겨졌는데, 이곳이 일반적인 전시 공원과 다른 점은 ‘방치’를 그 콘셉트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독립기념관이 일재 잔재이자 우리 민족의 치욕의 역사를 전시는 하되 홀대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첨탑이 지하 5m에 매장돼 관람객들이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시된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