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배기 살해한 열살짜리, 법정에 서다[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3.02.12 00:03:00

1993년 2월12일 영국서 사체로 발견된 두 살난 실종아동
범인은 당시 열살된 두 소년..범행 숨기려 사고사로 위장
엄벌 여론 들끓었지만 무기 징역받고도 16세에 가석방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3년 2월14일 영국 북부 리버풀의 어느 후미진 기찻길. 두 살배기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기차에 치인 흔적이 있었는데, 부검해보니 기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누군가 사망한 아이를 기차에 치여 사고사한 듯이 꾸민 것이었다.

피해자 제임스 패트릭 불저 (James Patrick Bulger).(사진=외신)
피해자는 이틀 전 실종된 제임스 패트릭 불저 (James Patrick Bulger)였다.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왔다가 혼잡한 틈에 사라졌다. 폐쇄회로 영상(CCTV)을 돌려보니, 앳돼 보이는 소년 둘이 제임스를 데리고 마트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이가 아이를 유괴한 사건이었다. 범인이 소년이라서 단순 장난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피해 아동은 이틀 만에 차갑게 식은 채 발견됐다.

범인은 당시 만 열 살 된 로버트 톰슨(Robert Thompson)과 존 베네블스(Jon Venables)였다. 어린 유괴범은 제임스의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누가 시켜서 유괴한 것도 아니었다. 당일 밝혀진 이들의 행적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제임스는 심하게 폭행을 당했고, 뇌손상이 직접 원인이 돼 사망했다. 두 범인은 사고사로 위장하려고 제임스를 기차에 치인 듯 보이게 범행을 꾸민 것이다. 마트에서 기찻길까지 4km 거리를 이동하면서 행인 38명이 제임스가 학대받는 걸 목격했지만 개입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들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보인 두 소년의 태도는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재판 도중 장난하는 듯한 모습과 죄를 서로에게 떠넘기는 변명, 이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거짓말까지. 영국 법원은 1993년 11월24일 두 유괴범에게 최소 8년 동안은 가석방할 수 없는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둘의 신상을 일반에 공개했다.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이례적이었다.



가벼운 처벌이라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판결은 이대로 확정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은 소년범에 대한 엄벌 여론이 확산했다. 정부는 무기징역을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의 가석방 기한을 최소 15년으로 정했지만, 위헌 소지가 있어서 폐지됐다. 그저 범죄 예방용 CCTV가 전국에 급속도로 확산했다.

소년원에서 복역하던 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일반 교도소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만 16세가 된 2001년 6월 가석방됐다. 유럽인권법원이 두 사람의 재판이 불공정했다는 점을 들어 석방을 요구한 게 컸다. 여론재판으로 흘러가면서 제대로 변론이 이뤄지지 못한 채 유죄가 확정됐다는 것이다. 두 범인은 유년기 성장 과정에서 가정 폭력과 방임에 노출돼 있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두 사람을 석방하면서 새로운 신분과 거처를 제공했다. 여론은 이들의 신상을 좇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청년이 유괴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영국인들은 여전히 둘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