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제 도입 1년…대기업 "저녁이 있는 삶" Vs 중소기업 "속수무책"
by김소연 기자
2019.07.01 00:00:00
대기업 "정시퇴근 쉬워졌다" 응답 75%
대기업·매출규모 클수록 ''주52시간제'' 안착
내년 시행 중소기업선 대응방안 못찾아 우려
"임금체계·근무형태 개편·인력계획 마련 등 필요"
[이데일리 김소연 김호준 기자]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지 7월 1일로 1년을 맞았다. 가장 먼저 주52시간제를 도입한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일부 부작용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업장에서 52시간 근무가 정착해 근무환경은 물론 회식문화까지 바꿨다.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노선버스업·방송업·교육서비스업 등 21개 특례제외업종도 버스와 대학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잡음없이 안착하는 분위기다. 가장 고민이 많은 곳은 내년 시행에 들어가는 중소·중견 기업들이다. 이들은 5개월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며 하소연한다.
LG디스플레이에 다니는 김은태(31·가명)씨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시에 퇴근한다. 처음과 달리 요즘엔 직원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며“정시 퇴근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해온 300인 이상 사업장(3526개소)에서 주 52시간제가 안착했다고 평가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하는 방식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조사를 진행한 300인 이상 사업장(83개 기업) 중 대기업에서 주 52시간제 도입이 안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시 퇴근이 쉬워졌다”는 응답은 기업 규모가 크고, 매출규모가 큰 기업에 집중됐다.
‘정시 퇴근 분위기가 정착됐다’고 응답한 비율(중복 투표가능)은 △대기업 75% △중견기업 38.9% △중소기업 21.7%로 나타났다.
정시 퇴근 분위기 정착에 대한 응답을 매출 규모로 나누면 △1100억 이상 구간에선 63.6% △350억 이상~1100억원 미만 33.3% △120억 이상~350억원 미만 21.4% △120억원 미만 구간 0%로 나타났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있는 기업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대다수가 7월 이후 주 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등 전반적인 안착 분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부의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1일부터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가는 특례제외업종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 5월 기준으로 1047곳, 노동자는 106만150명이다. 이 가운데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가 있는 기업은 125곳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는 국회 공전으로 탄력근로제 연장방안이 표류하자 선택·재량·탄력근로 등 유연근로제 도입을 준비 중인 사업장에 3개월의 계도기간과 적발 시에도 최대 6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난감해 하는 곳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대학이다 . 통상 대학의 입시 업무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집중 업무를 필요로 한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탄력근로제가 6개월로 연장되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지만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가 탄력근로제 연장에 합의했음에도 불구, 국회 공전으로 법안이 표류 중이다.
한 대학 총무팀 관계자는 “입학사정관들은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기간에 집중해서 전형별 학생들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외에 방법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 입학사정관들은 노동시간이 줄어 임금 보전이 안 된다며 반발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또다른 사립대 관계자는 “입학 업무가 몰리는 9월과 10월, 12월과 1월에는 현재 직원으로는 주 52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며 “행정 부서에 있는 직원들을 입시 부서에 파견 형식으로 보내 직원별 근무 시간을 맞추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주 52시간제 시행이 5개월여 남은 중소기업에서도 벌써부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1월부터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299인 이하 사업장은 2만7000곳에 달한다.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채용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직원들 또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보전을 요구할 게 불보듯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중기중앙회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300인 이상 기업도 6개월, 추가로 3개월 총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한만큼 중소기업에도 상응하는 수준의 계도기간을 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계도기간을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임금체계 개편이나 교대제 등 근무형태 개편 등이 수반돼야 주 52시간제가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주 52시간제에 따른 신규 채용 및 인력운용 계획을 수립하고, 낮은 기본급을 야근수당·주말수당 등으로 보전해온 왜곡된 임금체계와 업무량과 무관한 시간채우기식 근무형태 등 근로·임금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하청기업에서는 원청업체가 요구한 기한과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로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 52시간제에 따른 소기업의 어려움도 우려된다”며 “장시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나 관행 등을 전반적으로 바꿔야 52시간제 정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