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인 뉴욕)빙하기가 끝났도다..`아이스 에이지2`

by하정민 기자
2006.04.07 11:42:22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애니메이션 세계에 삼국시대가 도래했다. 전통의 명가 디즈니와 `슈렉`을 앞세우며 신흥강자로 떠오른 드림윅스의 양강 체제를 비집고, 20세기 폭스가 강력한 도전장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빙하기라는 독특한 소재를 내세워 지난 2002년 미국 극장가를 점령했던 폭스의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는 4년 후 더욱 막강해진 흥행 파워를 과시했다. `

아이스 에이지2`는 지난 주말(지난달 31일~2일) 북미 시장에서 무려 6803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려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1편의 첫 주 개봉 성적인 4631만달러를 넘어선 것은 물론, 역대 애니메이션의 개봉 첫 주 성적 중에서도 슈렉2,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빙하기 시대의 생존 투쟁을 소재로 했던 1편과 달리 2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의 주인공 맘모스 매니, 수다쟁이에 사고뭉치인 나무늘보 시드, 소심한 호랑이 디에고 일행은 빙하가 녹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안전한 고지대를 찾아 이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매니에겐 대홍수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 바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맘모스가 멸종되어 버렸다는 기절초풍할 소식을 듣게 된 것.

존재론적 절망에 빠진 매니 앞에 섹시하고 귀여운 암컷 맘모스 엘리가 나타난다. 매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들뜨지만 엘리는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이 주머니쥐라고 믿고 있다. 다른 주머니쥐들을 따라 나무에 매달리지만, 나뭇가지만 부러뜨리기 일쑤인 엘리 앞에 매니는 멸종위기의 맘모스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소위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시도가 엘리의 반감만 사면서 둘은 크게 다투고, 대홍수의 위기는 어김없이 주인공들에게도 닥친다.

`아이스 에이지2`는 "전 세대가 부담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의 기본 컨셉에 매우 충실한 영화다. 어드벤처, 로맨스, 코미디, 버디 무비까지 각종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지만 그 수위는 절대 무겁지 않다. 1편에 비해 코미디의 농도가 짙어졌고, 로맨스까지 추가됐으니 영화의 주 관객층인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에 대한 배려도 자상한 셈이다.



특히 빙하시대라는 설정은 1편은 물론 2편에서도 여전히 절묘하기 그지없다. 거대한 빙하 조각, 거센 파도, 들끓는 용암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매니 일행의 모험을 좀더 스릴있게 만들어주고, 역경을 같이 겪은 주인공들의 화해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3D 애니메이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설정이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 외에도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영화가 `뉴욕 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지존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픽사와 같은 서부의 대형 스튜디오와 달리 아이스 에이지를 제작한 곳은 뉴욕의 스튜디오 `블루 스카이`다. 극사실에 가까운 비주얼이 돋보이는 그래픽을 제작해온 블루 스카이는 `스타트랙` 등의 특수 효과를 담당하며 알찬 실력을 과시해왔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성우들의 면면에서도 디즈니나 드림웍스와는 다른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카메론 디아즈를 피오나 공주로 출연시켰던 `슈렉`, 안젤리나 졸리, 윌 스미스, 르네 젤웨거, 로버트 드니로 등을 떼거지로 등장시켰던 `샤크 테일` 등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영화 내용 자체보다 어떤 초특급 스타들이 목소리를 연기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이스 에이지2`의 두 주인공 매니와 엘리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은 레이 로마노와 퀸 라티파다. 레이 로마노는 CBS의 인기 시트콤 `내 사랑 레이먼드`의 주인공이고, 퀸 라티파는 힙합 가수 사상 최초로 헐리웃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인물이지만 미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퀸 라티파가 `셋 잇 오프` `본 콜렉터` `시카고` 등에 출연해 그나마 친숙한 편이지만 아직 A급 배우라고 보긴 어렵다.

이 외 슈렉의 떠벌이 당나귀 `동키`가 연상되는 떠벌이 나무늘보 `시드`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배우 역시 `칼리토`에서 알 파치노를 살해하는 풋내기 갱단 두목으로 출연했던 존 레기자모다. `킹콩` `스쿨 오브 락`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등에 출연하며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 성격파 배우 잭 블랙도 목소리 연기에 거든다.

개인적으로는 톱스타가 아닌 개성파 배우들의 특색있고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매우 좋았다. 특히 존 레기자모의 날카로운 쇳소리 음성, 누가 들어도 흑인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퀸 라티파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비록 할리웃 메이저 스튜디오인 폭스가 제작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뉴요커의 감수성을 담은 순수 뉴욕 산임을 입증시켜주는 작은 재미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