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딸 집에서 사라졌다"…거짓 연극 벌인 부부[그해 오늘]

by채나연 기자
2024.12.29 00:00:10

친부·동거녀 함께 실종 신고 접수
경찰, 친부 집서 실종 아동 혈흔 발견
재판부 친부 주범으로 인정…"상습 폭행 인정돼"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2017년 12월 29일 ‘전주 5세 여아 실종사건’ 당사자 고준희양이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왼쪽부터) 친부 고씨와 친부 동거녀 이씨.(사진=연합뉴스)
준희양에 대한 실종 신고는 12월 8일 접수됐다. 실종신고를 접수한 사람은 준희양의 친아버지인 고 모씨(당시 36세)와 준희양의 양어머니 이 모씨(당시 35세)였다.

이씨는 “20일 전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없어졌다. 별거 중인 (아이) 아빠가 데려간 것 같아 그간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경찰 수사를 요청했다.

아이가 실종된 지 20일이 지나 신고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부부를 상대로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후 보상금 500만 원을 내건 전단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에 나섰다.

반면 가족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준희양의 양외할머니는 경찰이 요청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했고, 친아버지 고씨 또한 법최면검사를 거부했다.

고씨는 “내가 피의자냐, 참고인이냐. 계속 이런 식이면 앞으로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고 경찰에 밝혔다.

경찰이 자택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했지만 준희양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5살 아이가 혼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어렵다고 여긴 경찰은 실종 사건이 가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친부 고씨와 양어머니 이씨, 이씨의 어머니 김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하고 이들의 자택을 압수수사한 결과 고씨 아파트 복도에서 준희양의 혈흔이 발견됐다.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자 고씨는 실종 신고 20일 만인 12월28일 “지난 4월 준희 시신을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고준희양 시신 유기 현장 검증하는 친부 고씨.(사진=연합뉴스)
시신은 준희양이 살던 전주 집에서 차로 약 50여 분 거리인 군산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발견된 시신은 수건을 감싼 미라처럼 보였다”며 “오랜 기간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범행을 자백한 친부 고씨는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자던 딸이 새벽 토사물로 기도가 막혀 숨진 상태였다”며 “딸의 죽음이 전처와 진행 중인 이혼소송에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범행했다”고 시신 유기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준희양의 양쪽 갈비뼈가 외부 충격으로 부러졌다는 소견이 나오며 아동 학대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친부 고씨는 같은 해 4월 준희양이 이씨를 귀찮게 했다는 이유로 발목을 수차례 밟았다. 이씨 역시 폭행에 가세해 준희양에게 손찌검을 일삼았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준희양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 직전에는 바닥을 기어 다닐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결국 지병인 갑상선 기능 저하증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준희양은 4월 26일 자정께 끝내 숨졌다.

하지만 고씨와 이씨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들 부부는 야산에 준희양을 암매장한 직후 태연하게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이에 더해 사망 사실을 숨기고자 준희양이 이씨 어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 이씨 어머니에게 양육비를 송금했다. 또 완주군에 양육수당을 신청해 7개월간 총 70만 원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 부부가 준희양을 폭행하고 방치해 사망케 했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친부 고씨를 아동학대 사건의 주범으로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씨의 경우 적극적인 방임 및 학대가 있었다고 판단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고씨와 이씨의 항소에도 결과는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 아동은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고씨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해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아무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씨는 피해 아동을 병원에 데려가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아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면서 “피고인은 범행의 중요 부분인 폭행 사실을 끝끝내 부인한 점 등을 고려하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씨에 대해선 “3개월간 피해 아동을 양육하면서 고씨의 폭행을 막기는커녕 심각한 상태에 있던 피해 아동을 방치했다”며 “피고인의 중대한 방임으로 인한 사망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9년 4월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