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 물려 사망한 사육사…사고 경위는 이랬다[그해 오늘]
by김민정 기자
2024.02.12 00:02:55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5년 2월 12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20년 경력의 사육사가 사자에게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 25분께 맹수마을 사자 방사장에서 사육사 A(52)씨가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 직원 B씨가 발견했다.
A씨는 구조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인근 건국대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는 이날 오후 1시 20분부터 20분간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끝나고 2시 15분께 A씨가 방사장에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프로그램은 방사장에 둔 먹이가 든 종이 동물 모형을 사자가 찢고서 먹이게 하는 훈련으로 동물의 공격성을 강화하려는 목표로 기획됐다.
발견 당시 A씨 곁에는 암수 사자 한 쌍이 있었다. 사자가 갇혀 있어야 할 내실 4개 중 한 개의 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A씨를 공격한 사자는 2006년생 수컷과 2010년생 암컷으로 두 마리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체 번식한 종이다.
검안 결과 A씨의 우측 목과 양다리에 사자에게 심하게 물린 외상이 발견됐고 과다출혈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는 CCTV가 있었지만 사자 두 마리가 30여 분간 방사장을 떠도는 상황을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관제센터 관리와 119 늑장신고 안전관리 수칙 부재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맹수들의 공격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대 수의학 신남식 교수는 YTN과 인터뷰에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연상태와 달리 사육공간이 좁아 운동량을 적고 무료함을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놀잇감을 넣어주거나 먹이를 숨겨 활동성을 높여 건강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활동이다”고 반박했다.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맹수사에는 21명이 근무한다. 평일에는 통상 2인 1조로 근무하지만 사고 당일은 다른 사육사가 휴무일이어서 A씨 혼자만 근무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고는 2013년 11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시베리아 호랑이(당시 3살)에게 물려 보름 만에 사망한 사건과 유사점이 많다. 사고 당시 C씨는 보호 장비 없이 맹수 우리에 혼자 있었다. 즉 ‘2인 1조’ 근무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의 사육사는 정기 휴무일이었다.
어린이대공원 측의 CCTV 판독 결과 이번 사고의 원인은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가 있던 내실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명의 사육사가 크로스체킹을 했을 때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었다.
사고가 난 동물원은 95종 505마리의 동물을 14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맹수 사육사는 단 2명뿐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함께 근무할 수는 없다.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었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향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 대책과 관련해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동물 내실 출입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사육관리 동선상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또 맹수 퇴치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봉 등 개인 안전 장구류를 추가로 확보해 유사시 사육사가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당시 참변을 일으킨 사자들의 뒷처리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사자를 내실에 둔 후 행동변화를 관찰하고 국내외 사례를 검토해 처리방안을 결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동물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사육사와 동물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기 힘들다며 사자를 일반관람객이 볼 수 있는 일반 전시장에서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갇혀 있는 동물에게 생명을 빼앗는 형벌을 내리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서울대공원에서 사고를 일으켰던 호랑이 로스토프도 일반관람객과 마주치는 전시장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로스토프가 생활하는 뒷방사장에는 모두 6마리의 호랑이가 단독 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