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용의자’ 조폭 부두목…도주 8개월 만에 공개수배 [그해 오늘]
by이재은 기자
2024.01.01 00:00:00
2006년·2013년 범행 당시 5개월 도주 전적
관할 문제로 사건 이관…반년 뒤 공조수사
공개수배 1개월 만에 은신처 내부에서 검거
法 “공범 폭행이 직접 사인” 징역 15년 확정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0년 1월 1일 경찰은 폭력조직 국제PJ파의 부두목인 조규석의 신상을 공개수배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에서 50대 사업가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 8개월여 만이었다. 조씨는 이 사건 용의자로 9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경찰에 붙잡힌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반년이 넘도록 경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 있던 것일까.
| 2020년 2월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폭력조직 국제PJ파의 부두목 조규석이 검거 돼 광역수사대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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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날은 2019년 5월 19일이었다. 당시 조씨는 하수인 2명과 친동생을 동원해 광주에서 사업가 A(56)씨를 감금한 뒤 폭행해 숨지게 했다.
회사 인수·합병(M & A) 투자 문제로 A씨와 금전적 갈등을 빚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후 조씨 등은 A씨의 시신을 경기 양주시의 한 공영주차장에 유기한 뒤 현장을 벗어났다.
공범들은 인근 모텔에서 소동을 벌이다가 검거됐지만 조씨는 곧바로 붙잡히지 않았다.
그는 사건 발생 9개월 뒤 충남 아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체포됐다. 은신처에는 휴대전화 2대와 전화번호들이 적힌 종이가 함께 발견된 상태였다. 조씨가 과거와 비슷한 수법으로 도피한 것이 포착된 순간이었다.
그는 2006년 광주 건설사주 납치 사건과 2013년 범서방파 두목 감금, 폭행 범행 당시에도 휴대전화를 수십대 바꿔 각각 5개월여간 도주했던 인물이었다.
조사 결과 조씨가 오랜 기간 도피할 수 있던 배경에는 그의 치밀한 도주 수법을 비롯해 관할 경찰서가 바뀌며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 존재했다. 수사 초기 광주경찰청과 광주서부경찰서가 담당했던 사건이 다른 지역으로 넘겨진 것이었다.
당시 광주 수사팀은 국제 PJ파 조직원을 압박해 조씨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상태였다. 팀 구성원으로는 2006년 도피하던 조씨를 검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형사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경찰 지휘부는 A씨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다른 관할이라는 점을 들어 사건을 양주경찰서로 이관했다.
이후 양주서에서 인력 및 정보력 부족 등 문제로 수사에 난항이 발생했다. 당시 중소도시형 2급지 경찰서이던 양주서에서 조씨를 추적하기 위한 수사 인력을 추가로 편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경기북부청 광역수사대 1개 팀이 지원에 나섰지만 조씨를 돕거나 행방을 알 만한 조직원 등 정보력이 부족해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난 뒤에야 광주 수사팀과의 공조가 시작됐고 이듬해 1월 조씨에 대한 공개 수배가 이뤄졌다. 조씨가 행적을 감춘 지 약 8개월 만이었다.
공개수배 1개월여 만에 붙잡힌 조씨는 강도치사, 감금, 사체유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강도 고의가 없었고 사망을 예견하지 못했다”며 강도치사 혐의는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살해를 기획하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하수인을 동원해 범행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10억원을 준다고 했는데도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등 막대한 주식 이득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해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씨와 검찰 측은 쌍방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처음부터 피해자를 살해하려 계획·의도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고 공범의 폭행이 피해자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조씨 측은 2심에서 “재물을 빼앗을 의도가 없었고 심하게 피해자를 폭행한 적도 없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대법원이 조씨 측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15년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