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성분변경’ 2심 통해 명예 회복한 코오롱, 바이오사업 날개 달까
by김새미 기자
2023.10.31 09:05:26
2심 판결문 살펴보니…“1심서 인정됐던 일부 과실…2심선 코오롱 과실 아냐”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재판·식약처 허가 취소처분 행정소송에 미칠 영향은?
코오롱생명과학·티슈진, 인보사 국내 재출시보단 美 시판허가에 방점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이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을 조작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났다. 뿐만 아니라 1심에선 일부 인정됐던 코오롱생명과학의 과실이 2심에서는 과실이 없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명예 회복을 하게 됐다. 이로써 코오롱그룹의 바이오 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지 주목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6-1부(재판장 원종찬)는 지난 18일 위계공무집행방해·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보조금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코오롱생명과학 상무 조모씨와 김모씨에게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조씨의 뇌물 공여 혐의는 유죄로 인정,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보다 가중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데일리는 25일 해당 재판의 판결문을 확보해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의 판단이 다른 부분을 살펴봤다. 1심 재판부는 코오롱생명과학이 품목허가 신청 과정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 서류를 일부 빠트린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식약처가 해당 서류에 대해 면제해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해당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 2액 성분 변경을 인지한 시점이 언제인가였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코오롱생명과학이 2019년 3월 30일 이전에 동종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 세포(GP2-293 세포)라는 걸 인지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2019년 2월 26일 미국 인보사에 대한 STR 검사(유전학 계통검사) 예비 결과를 수령했지만, 한국 인보사 2액 역시 GP2-293 세포라고 확신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인보사의 2액 세포에 대한 STR 검사 최종 결과를 수령한 2019년 3월 30일부터 코오롱생명과학이 2액의 주성분이 GP2-293 세포라고 인지했다고 봤다.
그렇다면 2액의 성분이 신장세포로 바뀐 시점은 언제일까? 재판부는 ‘인보사 초기 개발 당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2액 세포의 유래에 관한 착오는 인보사 초기 개발 당시 신장세포의 형질변이를 발견해 내지 못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2심 재판부는 큰 틀에서는 원심을 유지했지만 1심에서 인정했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일부 과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에선 코오롱생명과학이 누드마우스 실험 결과, 전장유전체시퀀싱(WGS) 분석 결과 등 식약처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 서류를 빠트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해당 서류에 대해 식약처가 면제해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코오롱생명과학의 임원 A씨는 2006년 6월 14일 연구원으로부터 누드마우스 실험결과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이어 2015년 11월 18일 재차 위 실험 결과를 전달받아 인보사 2액 세포의 종양원성을 확인했다. A씨는 국제공통기술문서(CTD)에서 종양원성이 발견된 누드마우스 실험 결과 삭제를 지시했다.
CTD란 2001년 ICH에서 합의한 통일화된 표준문서양식으로 각국의 규제당국별로 상이한 의약품 허가 요구사항을 통일화한 것이다. 의약품 국제 허가 시 제출하는 자료로 품질평가자료부터 비임상·임상자료 등이 포함된다.
앞서 누드마우스 실험결과는 참고자료로 CTD에 담겨 식약처에 제출됐지만, 6만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 당시 담당 공무원이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아닌 코오롱티슈진이 작성한데다 필수적인 자료가 아닌 참고자료라 간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에서도 당시 담당 공무원은 “CTD가 6만장이 넘어 모두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최근 자료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봤더니 첨부 자료에 (누드마우스 실험 자료가) 제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에 2액 세포 종양원성 시험결과에 대해 허위사실을 보고함으로써 식약처 품목허가 심사 담당 공무원의 오인을 유발했다고 봤다. 또한 식약처가 정확한 자료를 심사하지 못하도록 누드마우스 실험 결과 삭제를 지시했으며, WGS 분석 결과를 확인한 이후 CTD에 정확한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2액 세포의 종양원성 시험결과에 대해 허위사실을 보고한 혐의에 대해 해당 시험결과는 CTD 초안에 담겼던 내용이기 때문에 식약처의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삭제를 지시한 누드마우스 실험결과는 CTD 초안에 불과했다”며 “식약처는 초안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변경 거쳐 제출된 최종 CTD만 심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CTD 일부 내용에 수정, 변경 등을 지시해 (해당 시험결과를 삭제하라는 지시가) 반영됐다고 하더라도 ‘삭제를 지시했다’는 작위에 해당하는 적극적인 위계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식약처도 이 부분(누드마우스 시험결과 등) 종양원성 시험자료를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았다”면서 식약처의 심사가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식약처가 정확한 심사를 하지 못하도록 해당 시험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단순 실수로 인한 누락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계로 단정짓기가 어렵다”고 봤다. 또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식약처가 누드마우스 시험결과 제출 의무를 면제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2심 결과에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성분 조작 의혹뿐 아니라 일부 과실에 대한 혐의도 씻어낼 수 있게 됐다. 인보사에 대한 오해를 풀고 명예를 회복했다는 게 회사 측의 평가다. 이번 2심 판단이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재판 등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식약처에 인보사 성분을 허위 보고하는데 개입한 혐의로 2020년 2월부터 현재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인보사 개발사 코오롱티슈진(950160)이 임상중단 명령(Clinical hold, 이하 CH)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미국 임상 3상이 문제없는 것처럼 홍보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인보사 성분 조작 혐의’ 소송에선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사기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연구개발계획서 등에 ‘미국 임상 3상 승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CH를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점이나 ‘2018년 미국 생물의약품 신약허가신청(BLA) 예정’이라고 기재한 정도로는 기망 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이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심 재판부는 인보사 주성분이 연골 세포가 아닌 것이 확인됐으므로 식약처가 품목허가를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2021년 2월 1심에서 패소하고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선고는 내달 10일로 예정돼 있다.
국내 소송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이 승소하더라도 인보사 국내 재출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식약처는 인보사의 허가를 재신청하려면 원료를 바꿔 초기 임상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도 국내 소송을 통해 인보사를 국내에서 다시 출시하는 것보다는 미국 TG-C(인보사) 시판허가를 우선시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은 올해 말까지 미국 임상 3상의 환자 투약을 마무리하고 1~2년간 경과를 관찰할 계획이다. 1차평가지표 충족 여부는 내년 8월 말 확인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임상이 완료되는 시점은 2025년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