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만료 D-1 ‘20년 전 강간범 DNA’를 찾았다 [그해 오늘]
by홍수현 기자
2023.08.26 00:00:00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끈질긴 유전자 수사로 20년 전 강간 사건 피고인이 결국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만료를 단 하루 앞두고 기소된 결과다.
2021년 8월 26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강간·주거침입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56)에게 강간미수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했다.
A씨는 2001년 3월 제주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피해자를 강간한 혐의로 2021년 3월 2일 기소됐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2001년 사건 당시 현장에 남은 증거는 피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묻은 휴지 뭉치가 유일했다.
그 시절 서귀포경찰서는 휴지 뭉치에 묻은 정액에서 DNA를 검출했지만, 이와 일치하는 인물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미제 사건 현장에서 추출한 1800여 개의 DNA를 재분석하는 사업이 진행됐다. 마침내 2019년 3월, 드디어 해당 DNA가 A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DNA 일치 사실이 밝혀졌을 때 A씨는 이미 교도소에 복역 중인 상태였다. 인천과 경기, 서울 등지에서 강간 등 성범죄 18건과 강력범죄 165건 등 모두 183건의 범죄를 추가로 저질러 2009년 징역 18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사건 당시 경찰은 적법한 압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휴지 뭉치를 가져와 증거능력이 의심된다”며 “또 휴지 뭉치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유전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검출될 가능성도 있어 별도의 확인 절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 버리고 간 휴지 뭉치는 유류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유류물은 형사소송법상 영장 없이도 압수할 수 있어 A씨 측 주장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현재 DNA 감정 기법에 비춰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휴지 뭉치에서 검출된 유전자는 피고인의 것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해자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20년간 피고인이 붙잡히지 않아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며 “다만, 20년 전 양형 기준과 피해자 추가 진술에 따르면 당시 강간이 미수에 그쳤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A씨의 출소일은 2027년 2월 24일에서 4년 뒤로 미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