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신고' 중학생 딸 죽인 계부…살인 설계자는 친모였다[그해 오늘]
by한광범 기자
2023.05.07 00:01:00
2019년 광주 중학생 딸 살해한 계부·친모…징역 30년 확정
애초 "계부 단독 범행" 입맞춰…계부 입 통해 실체 드러나
친모, 성범죄 피해자인 딸 원망…구체적 범행 계획 꾸몄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8년 5월 7일. 광주 동부경찰서가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를 받는 남성 김모(당시 31세)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김씨는 자신이 성폭력을 저지른 의붓딸 A양(당시 12세)이 자신을 성범죄로 신고하자, A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날 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며 ‘숨진 A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치자들의 질문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답했다. 이어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억울함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A양의 친모이자 김씨와 재혼한 유모(당시 39세)씨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었다. 계부의 성범죄로부터 친딸을 보호해야 할 친모가 오히려 김씨의 보복살인에 동참한 것이다. 경찰이 살인방조 혐의를 신청한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됐으나, 보강수사를 거친 후 재신청한 구속영장은 같은 달 16일 결국 발부됐다.
| 성범죄 피해를 신고한 중학생 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친모 유모씨와 계부 김모씨.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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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은 재혼한 친모 유씨, 계부 김씨와 함께 살았다. 유씨는 함께 사는 A양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찍은 사진과 음란사이트 주소를 전송했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A양은 피해사실을 친부에게 털어놨고 친부의 도움을 받아 2019년 4월10일 김씨를 성범죄 혐의로 신고했다. A양은 원래 살던 광주 집을 떠나 전남 목포에 사는 친부에게 연락해 그 이후부터 친부와 함께 살았다.
계부 김씨와 친모 유씨는 A양의 성범죄 신고 사실을 전해 들은 후 살인을 계획했다. 친모 유씨는 딸 A양의 계속된 호소를 무시하다가 성범죄 신고가 된 이후엔 “A양 탓이 크다”는 김씨의 말만 믿고 A양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됐다. 그는 같은 해 4월 25일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이틀 후인 27일 전남 목포에서 A양을 불러내 차량에 태운 후,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A양에게 건네 마시게 했다. A양은 친모 유씨가 건넨 음료수를 아무 의심 없이 마셨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됐다.
김씨는 차량을 전남 무안의 한 농로로 끌고 가 그날 저녁 차량 안에서 A양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 당시 차량 안에는 친모 유씨, 김씨와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아이도 함께 있었다. 김씨는 A양을 살해한 후 다음 날 새벽 광주 너릿재터널 인근의 저수지에 시신을 유기했다.
김씨와 유씨는 시신 유기 당일 오후 시신이 혹시 발견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세 차례에 걸쳐 시신유기 현장을 찾았다. 결국 당일 오후 A양 시신은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발견 후 친모인 유씨에게 시신 발견 사실을 알렸다. 김씨는 이를 전해 듣고 당일 오후 6시 인근 지구대를 찾아 자수했다.
당초 자수하기 전 김씨와 유씨는 ‘김씨의 단독 범행’으로 입을 맞췄다. 김씨도 첫 조사에서 입을 맞춘 대로 단독 범행을 주장했으나, 경찰이 현장에 유씨가 있었다는 증거들을 내밀자 “유씨가 살해현장에 있었지만 범행에 가담하진 않았다”고 다른 거짓진술을 했다.
유씨는 첫 조사에서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남편 김씨의 진술을 확인한 후 “현장에 있었지만 김씨에게 나도 보복을 당할까 봐 무서워서 말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유씨의 진술은 김씨가 입을 열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부터 “아내 유씨가 A양 살인을 유도했다. 갓난아이를 위해 범행하지 말자고 아내 유씨를 계속 설득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을 주도한 유씨가 범행에 사용할 수면제도 처방받았고 직접 친부 집에 거주하던 A양을 불러냈으며, 범행 현장에서 자신에게 A양 피를 닦으라고 물티슈까지 건넸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계부 김씨와 친모 유씨를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재판에 넘겼다. 유씨는 법정에서도 “남편 김씨가 딸을 살해할 줄 몰랐다. 김씨가 차 안에서 A양 목을 조를 때야 살해계획을 알았지만 막지 못했다”며 자신은 방조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살인방조의 경우 살인에 비해 형량이 크게 낮은 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공소사실을 대부분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주도한 것은 아내 유씨”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죄질이 극히 나쁘고 중대하다. 사회에서 장기간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김씨와 유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도 “유씨가 친모임에도 구체적인 살인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와 유씨가 공동정범이라고 판단하고,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유씨가 전 남편에게 고소를 취하 해달라고 부탁하고 A양에게는 비난 메시지를 보낸 점, 자신이 죽고 싶어 수면제를 처방받았다고 했으나 행동에 우울감이 전혀 없었던 점, 공중전화로 딸을 직접 불러내 차에 태운 점 등을 근거로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씨와 김씨는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징역 30년이었다. 2심 재판부는 “김씨는 의붓딸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중단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추행 사건으로 화가 난 유씨를 달랜다는 이유로 주도적으로 범행을 했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씨에 대해서도 “A양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친모에 대한 원망과 극도의 공포를 겪었을 것”이라며 “김씨 못지않은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모두 상고했지만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