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살해한 성범죄자 새아버지..지켜만 본 경찰[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3.04.09 00:03:00

의붓아버지와 친모에게 살해돼 비명에 간 불운의 여중생
경찰 조사시 제대로 도움받지 못한 새 범죄에 노출
피해자 지원 미흡하고 수사도 미진한 경찰의 흠결 도마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9년 4월9일. 목포경찰서는 성범죄 피해를 입은 10대 A양을 조사했다. 통상 이런 조사에는 ‘신뢰관계인’이 배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에, 가족이나 변호사와 같은 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A양을 살해한 친모(왼쪽)와 의붓아버지.(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날 A양 곁에는 이럴 만한 이들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피해자 조사는 진술이 부정확하고, 오락가락할 여지가 있다. 이러면 경찰이 가해자를 수사하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럼에도 경찰은 A양 조사를 강행했다.

피해 내용을 고려하면, A양이 조사 시 받았을 심리적 압박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A양의 의붓아버지였다. A양 친모는 딸을 낳고 이혼하고서 재혼했는데, 재혼한 B씨가 A양에게 마수를 뻗친 것이다. B씨가 자신의 나체 사진과 야한 동영상을 A양에게 보내곤 했다. 나중에는 성폭행을 시도했다.

A양과 함께 살던 친부가 이 사실을 알고서 경찰에 신고했다. 이 신고를 계기로 A양에 대한 조사가 이날 이뤄졌다. 이렇듯 경찰은 A양의 신뢰관계인으로 친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조사 시 배석하도록 조처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조사가 이뤄진 지 18일이 지나서 A양은 살해당했다. 살인 가해자는 앞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의붓아버지 B씨였다. B씨는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가 탄로 나고 이로써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을 예상하고서 피해자 A양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모가 남편 B씨의 범행에 가담해 친딸을 살해한 사실도 참혹했지만, 이보다 더 참담한 건 부실한 경찰의 조처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A양에 대한 첫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 B씨의 신병을 확보했으면 막았을 사건이라는 것이다. 첫 조사 이후 살해되기까지 중간에 이뤄진 2차 조사(4월14일)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조사에서 A양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경찰에서는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다.

A양이 B씨의 범행에 노출된 새 경찰의 사건 처리는 계속 엉망이었다. 목포경찰서는 2차 조사를 마치고 사건을 전남지방경찰청에 이송했지만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됐다. 사건이 다시 관할인 광주지방경찰청으로 이송된 것은 같은 달 23일. A양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9일 당시에도 이 사건은 정식으로 입건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절차가 잘못됐으니 그간에 수사가 이뤄졌을 리 없었다.

B씨와 친모는 2020년 9월 각각 징역 30년이 확정됐다. A양을 살해하고, 이후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데 따른 죗값이었다.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랐다고는 하지만, A양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으로 이 사건을 조사하고서, “경찰은 피해자 신고부터 사망까지 피해자 안전을 살피는 노력을 하지 않아 보호에 공백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