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났어도 안 열린 철창...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그해 오늘]
by이연호 기자
2023.02.11 00:03:00
2007년 2월 11일 새벽,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발생
10명 사망·17명 부상...국내 발생 사고 중 최다 외국인 사상자 내
직원들, 외국인 도주 우려해 이중 잠금장치 해제 지체하며 禍 키워
중국인 김모 씨 방화로 결론...사고 전후 관리 여러 문제점 드러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2007년 2월 11일 오전 3시 55분께 전남 여수시 화장동 법무부 산하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현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출입국 업무와 불법 체류자 보호 업무를 모두 취급하는 이곳에 수용된 외국인 55명이 다 잠들어 있을 시각이었다. 그런데 3층의 304호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곳은 곧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직후 모습. 사진=연합뉴스. |
|
불은 삽시간에 305호와 306호로 번지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외국인들은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다. 불이 나자 소방 당국은 소방차 27대와 소방관 120여명을 투입해 30여 분만에 초동 진화에 성공했고 1시간쯤 지나서 불길을 완전히 잡았다. 인명 피해는 컸다. 소방대원들은 외국인들이 수용된 건물 3층에 진입한 이후에도 각 방이 쇠창살로 분리돼 있는데다 보온을 위해 바닥에 깔아둔 우레탄 매트가 타면서 유독가스가 많이 나와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화재로 당시 보호 중이던 55명의 외국인 가운데 10명이 죽고 17명이 부상당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여수와 순천 등에서 불법 체류 등 혐의로 잡혀 와 본국 강제 송환을 앞두고 있었다. 대부분 임금 체불이 원인이었다. 이 사고는 당시까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외국인 사상자를 낸 사고로 기록됐다.
이 사고는 화재 발생 후 여러 미흡한 대처로 우리나라의 열악한 외국인 인권 정책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외국인보호시설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 경비를 담당하던 직원들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인 보호 외국인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도주를 우려해 이중 잠금 장치를 여는데 시간을 오래 지체했다.
구조된 외국인 수용자들 가운데 일부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철창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소방대원들이 열어 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 결과 10명의 보호 외국인들이 우레탄 매트가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와 연기에 질식해 사망했고 다수의 생존자들도 부상과 후유증을 갖게 됐다.
허술한 초기 대응은 물론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 또 경찰 조사에 따르면 화재 당시 관리사무소에는 건물 안과 밖에 각각 5명과 4명이 출근한 상태였지만 조사 결과 건물 내부에서는 3명만이 근무 중이었고 나머지 인원은 취침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방화로 최종 결론 내렸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를 가리는 행동 등을 한 조선족 출신의 중국인 김모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당시 여수경찰서는 김 씨가 카메라를 가린 뒤 불길이 치솟았고, 불이 난 뒤에는 그가 불이 잘 타도록 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이같이 결론 냈다. 또 김 씨가 당시 운동복을 겹쳐 입고 있었고 현금을 소지한 점 등으로 미뤄, 불이 난 혼란을 틈타 달아나려 했던 것으로 봤다. 하지만 용의자가 화재로 숨지면서 경찰은 직접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생존자 진술 외에 방화 동기와 방화 도구로 추정되는 라이터의 반입 경위 등을 파악하지 못하며 수사의 한계를 남겼다.
경찰과 별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조사를 벌여 당시 보호실의 구조와 운영이 구금시설과 다름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보호 외국인들에 대해 임금 체불 상담 등과 관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권리 구제 절차 안내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으며, 화재 이후 사고 피해자들에게 수갑을 채운 채로 병원 치료를 받게 하는 등 반인권적 행동들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화재참사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는 올해 화재 참사 16주기를 맞아 지난 10일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추모식과 추모비 제막식을 가졌다. 추진위는 지난해 약 5개월 간 시민 모금 운동을 해 조성한 308만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추모비를 설치했다. 당시 화재 참사 사건을 잊지 않고 외국인 보호소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