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면죄, 무전입대'..고위공직자 병역 첫공개[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2.10.29 00:00:03

1999년 10월29일 처음 공개한 병역 이행 사항 후폭풍
국회의원 셋에 하나는 ''면제''..병무청 軍면제율도 상당
국민정서법 거슬러 고위공직자 상당수는 발목 잡혀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병무청은 1999년 10월29일 고위공직자 병역이행 사항을 관보에 게재했다. 건국 이래 세칭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의 병역 민낯이 드러나기는 처음이었다. 결과는 ‘유전면제, 무전입대’라는 세간의 의심이 얼마큼은 사실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2019년 9월 태풍 ‘링링’ 피해 복구에 나선 육군 장병들.(사진=연합뉴스)
공개 대상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주요 국가기관에 소속한 고위공직자와 직계비속 1만2674명이다. 구체적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고등법원 부장급 이상 판사·검사장급 이상 검사 ▲정부부처 장차관을 포함한 1급 이상 공무원, ▲소장 이상 군인 ▲병무청 4급 이상 직원 등 5885명이다. 이들의 아들과 손자 등 3대에 걸친 직계비속 6789명의 병역 사항도 일반에 공개 대상이었다.

고위공직자 가운데 현역 복무를 한 이들은 4070명으로 전체의 69.2%였다. 나머지 1815명 가운데 면제 1027명(17.4%), 방위 664명(11.3%)이고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이 124명(2.1%)였다.

직급별로 보면 국회의원 면제율이 28.2%(81명)로 가장 많았다. 이를 두고 여의도에서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려면 군대를 면제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이어 외무공무원 26.7%(31명), 장차관 23.6%(21명), 1급 공무원 21.8%(45명) 순이었다. 직급 가운데 유일하게 전부가 병역 의무를 이행한 데는 군(軍)이 유일했으니,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고위공직자의 직계비속 병역 이행 사항도 눈에 띄었다. 국회의원 아들과 손자는 면제율이 21.6%였다. 외무공무원 직계비속의 군 면제율도 15.5%나 됐다. 외국 근무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현지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병역사무를 관장하는 병무청 소속 직원 가운데 아들과 손자가 면제 판정을 받은 비율이 18.4%였다.

고위공직자와 직계비속이 일반과 비교하면 군 면제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관건은 사유였다. 병무청에 따르면, 1999년 기준 일반인 평균 면제율은 36.5%였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등의 군 면제 사유 가운데 절반 이상(53%)이 질병이었다. 체중미달, 척추디스크, 안과질환, 정신지체 등이 대부분이었다. 일반인 면제 사유가 대부분 저학력, 유죄판결, 생계곤란, 고아 등인 것과 비교된다. 심지어 신상우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7명은 탈영으로, 다른 9명은 병역기피로 각각 병역 의무를 종료했다.

공군 활주로를 제설하는 군장병들.(사진=연합뉴스)
병역은 ‘국민 정서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파장을 불렀다. 당시 이회장 한나라당 총재는 장남과 차남이 모두 체중미달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걸 두고 ‘병풍’ 의혹에 시달렸다. 훗날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정치 행보에 타격이 컸다.

이후 고위공직자의 병역 이행 사항은 줄곧 일반에 공개됐다. 그때부터 병역은 고위공직자 자격을 따지는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 가깝게는 윤석열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정호영 후보자가 있다. 정 후보자는 아들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아빠 찬스’ 의혹이 일었다. 결국 경찰 수사로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정 후보자는 이미 사퇴한 후였다. 여러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탓이었는데 병역 의혹도 개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