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향락의 밤, 그 화려함 속 고독[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10>

by오현주 기자
2021.11.13 00:01:00

▲스테인·레이스테르·마네가 들여다본 ''술집''
마음 맞는 사람들 술잔 기울이며 취중진담
사교장이자 매춘 성행한 스테인 그린 술집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생각 잠긴 女종업원
공허한 얼굴에 스민 고단함 포착한 마네도
화려한 술집 배경에 여성직업인 애환 엿봐

에두아르 마네가 1882년 그린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인 마네는 세련된 도시의 감각을 흠씬 묻힌 붓으로 당대 화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파리의 명물이던 카페·카바레 안을 포착한 작품도 여럿인데, 그중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바’는 국전에 마지막으로 출품한 대작이며 대표작으로 꼽힌다. 실제감이 확 와닿는 내부 공간과 테이블 위 술병·과일·꽃 등의 대비도 특별하지만 ‘거울’이란 설정은 대단히 독특했다. 거울에 반사된 후면이 각도로나 원근법으로나 모순적임에도 별로 개의치 않은 마네의 회화적 자유로움이 살아있다. 캔버스에 유채, 96×130㎝, 영국 런던 코털드갤러리 소장.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술집은 예나 지금이나 즐거운 장소이다. 물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술집이 10시로 마감됐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주가들은 마시다 말고 일어서야 하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어려운 상사 혹은 거래처 직원들과 고역의 회식을 치러내야 하는 20∼30대 직장인들은 오히려 환호했다니, 역시 술은 취향에 따라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마시는 게 좋은 것이다.

알코올은 사람의 자제력을 흐트려 평소 하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 일을 마치고 들른 시끄러운 선술집에서는 그래서 마음을 터놓는 대화가 오가기도 하지만, 술집이란 데서는 원체 예기치 않은 싸움이나 비도덕적인 일이 자주 벌어졌다. 요즘에야 성년여성이 술집을 드나드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과거 19세기까지만 해도 멀쩡한 처자가 남성의 에스코트 없이 술집을 다니는 것은 딱 오해받기 좋은 일이었다.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도 단순히 경영자나 종업원으로서가 아닌, 함부로 접근해도 좋은 상대로 취급됐다.

즐거운 일상의 풍경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던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얀 스테인(1625~1679)이 1665년경 그린 술집 풍경은, 당장 시끄러운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술집에는 술을 달라고 주인을 부를 때 천장 한가운데 매달려 있는 종을 울리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그림 전면에는 눈이 풀리고 얼굴이 벌건 바이올린 연주자가 잠시 연주를 멈추고 테이블에 팔을 기댄 여성과 대화하고 있다. 그 왼쪽 옆에는 술잔을 든 여인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앉아 있는데,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어대는 남자와 지나치게 붙어 있어 도대체 이 남자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들 뒤로는 화덕에 불을 피우는 노파가 보일 듯 말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른쪽 테이블에서는 카드놀이가 한창이다. 세 남자와 한 여인이 게임 중인데, 한 남자는 게임을 포기한 듯이 일어나 있고, 여인의 기세등등한 표정에서는 좋은 패를 가졌다는 게 읽힌다. 다만 지금의 시선에선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이 술집 풍경에 문제적 지점이 숨어 있는데, 남자들과 함께 있는 여인이 잠재적 매춘부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물들이 누구였는지 규명할 수 없기에, 그저 한잔 하고 게임도 하고 싶은 여성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통상 술집은 여관업을 겸해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안식처가 돼 줬지만, 빈번하게 매매춘을 중개하는 장소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재의 그림은 일상을 그린 풍속화가 번성했던 당시의 네덜란드에서 수도 없이 그려졌다. 카드놀이를 하든 연주를 하든 함께 술을 마시든 그 안에 암시된 것은 돈을 매개로 한 즉흥적 매매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얀 스테인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과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는 술집 내부’(1665년경). 꾸밈없는 일상의 정경을 선호한 스테인은 농민·중산층의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많이 그렸다. 유쾌한 세상살이에 숨긴 ‘뼈’는 작가만의 특징. 떠들썩한 웃음만으로 살 순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 도덕적 비평의 색조가 그거다. 캔버스에 유채, 81.9×70.6㎝, 영국왕실컬렉션 소장.


같은 시대를 산 여성화가 주디스 레이스테르(1609∼1660) 역시 술집에서 취객을 위해 흥겹게 연주하는 청년이나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그렸다. 레이스테르는 당시 화가가 전문직업인 이들이 만든 성 누가 길드에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가입했고, 남성 화가들과 경쟁했고, 화실에서 제자들을 수련시켰다. 제자 중 하나가 약속을 어기고 당대 내로라하는 화가였던 프란츠 할스 아래로 들어간 사실에 분개해 할스를 상대로 소송을 해 이기기도 했던 만만치 않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미스테리한 작은 그림이 있는데, 후대가 ‘제안’(1631)이라 제목을 단 작품이다.

통상 술집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과는 어딘지 달라 보인다. 그림의 배경이 그저 벽이라 이곳이 술집인지 여염집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작은 호롱불에 의지해 바느질거리에 코를 박고 있는 이 여인 옆에 있는 남자의 입성과 태도로 볼 때 가정집이 아닌 건 분명하다. 남자는 함부로 여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전 몇닢을 꺼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인은 남자의 ‘제안’을 수락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술집을 배경으로 번번이 그렸던 장면, 노파가 등장해 커플을 중개하고 돈을 받거나 하던 그 장면을, 레이스테르는 다르게 해석했던 것이다. 많은 학자가 이 그림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이 여인이 누구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왜 남자가 돈을 내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단지 한 가지, 같은 시대 비슷한 주제를 그린 다른 화가와는 달리 레이스테르의 이 작업은 여성의 입장을 좀더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주디스 레이스테르의 ‘제안’(1631).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에 자신의 작업장을 열고 견습생을 수련시키는 권리를 얻은 최초의 여성 마스터였던 레이스테르는 실내 장면을 작품 주제로 처음 활용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 간에 오가는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을 그린 작품은, 시민의 일상을 다룬 유쾌한 장르화·초상화를 많이 그린 레이스테르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드러냈다. 패널에 유채, 30.9×24.2㎝, 네덜란드 덴하그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박물관 소장.


19세기 대도시 술집은 공연이 결합되며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게 됐는데, 당시 문화의 중심지던 프랑스 파리의 폴리베르제르도 그중 하나였다. 폴리베르제르는 가벼운 오페라나 서커스, 무용 등을 곁들인 극장식 술집.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그린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바’(1882)에서는 화면의 왼쪽 위 귀퉁이에 살짝 보이는 녹색 신발을 신은 사람의 다리가 공중서커스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림 가운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은 이곳의 종업원이다. 곧 손님의 주문을 받고 술이나 과일접시를 옮길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딘지 이상한 함정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찬찬히 보면 이 여성이 서 있는 바는 등 뒤에 큰 거울이 있는, 비좁은 공간이다. 이 여성이 멍한 눈길을 던진 너른 술집의 광경을 우리도 볼 수 있는 것은 등 뒤의 거대한 거울 덕이다. 금색 테두리로 장식된 거울 속 장면은 여성의 팔 뒤쪽 장면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기둥과 화려한 샹들리에, 빼곡하게 들어찬 손님들, (마땅히 놀랍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놀랍게도) 여성의 뒷모습까지 말이다.

늘 거울을 대하는 우리로서는 이 여성의 뒷모습영 직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구도라고 판단할 수 있다. 화가가 그린 여성이 명확히 정면상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거울에 비친 뒷모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그림 속 거울에서는 전혀 다른 각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여성의 그림자는 우리 예상보다 더 허리를 숙이고 있고, 맞은편의 콧수염 남성이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중간에 있는 바의 폭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 비밀이야기라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마 술집에 나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여성은 콧수염 남성으로부터 매춘 제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바’(1882) 중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거울’이란 특별한 설정에 담긴 여성과 남성(왼쪽), 대리석 탁자에 놓인 꽃과 과일·술병이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나눈 듯한 묘한 대조를 이룬다.


19세기 말이면 여성도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무용을 하거나, 서커스를 하거나, 화가의 모델로 일하는 여성은, 그러니까 계급이 낮고 교육의 수혜를 받지 못한 여성 직업인은 반쯤 매춘부 취급을 받았다. 마네의 그림 속 여성은 거울 속 뒷모습으로는 남성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일지라도, 정면의 얼굴은 시끌벅적한 광경에 피로를 느끼며 하루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정면의 모습과과 거울 속 뒷모습, 어느 쪽이 여성의 참모습인가. 어느 쪽이 내면이고 어느 쪽이 외면일 것인가. 마네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