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들이 ATM기 찾는 이유…"세금폭탄 피해 현금 인출"
by이지현 기자
2021.09.06 00:00:00
[돈이 보이는 창]
부자들 최대 화두는 절세
과세 부담 피하려 꼬리표 떼고 현금화
절세 금융상품 줄며 ISA 쏠림 커져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은행에서 목돈을 찾으면 어디에 쓸 거냐고 사용처를 꼬치꼬치 물어요. 내 돈을 찾는 건데도 눈치를 보게 됩니다. 자녀에게 현금으로 주는 것도 추적
당하면 세금이 더 많이 붙는다고 하고 부동산을 사려 해도 세금이 꼴 보기 싫어 아예 현금으로 보관할 생각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 테헤란로 한 은행에서 만난 30억원대 자산가는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부동산 거래 보유 관련 세금을 옥죄면서 증여도 늘어난 가운데 관련 세금 회피자를 찾기 위해 돋보기를 들이대자 일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아예 돈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금융거래통장에서 현금으로 1000만~2000만원 이상을 인출하는 경우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4조(불법재산 등으로 의심되는 거래의 보고 등)’에 따라 금융결제원과 국세청에 해당 내용이 담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현금을 인출해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정리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번거로움은 종종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성과로 이어지고 있지만, 자산가들 사이에선 자금이 추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아예 금융계좌에 입금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의 한 증권사 PB는 “세금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주식을 현금화하고 꾸준히 돈을 인출해 금고에 넣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돈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1000만원 이하 소액 인출의 경우 자금 이동 경로 등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현금으로 증여받은 경우 금융계좌 등에 넣지 않고 현금으로 보관하거나 사용할 경우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강남·서초 자산가들 사이에선 세금 회피 수단으로 이같은 현금 보관법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전문가들은 금융권의 절세상품 감소가 세금회피 수단 확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도입된 해외 주식형 펀드 비과세 혜택은 예정대로 올해 말 사라진다. 고위험 채권인 하이일드 펀드 수익에 대한 3000만원 한도 분리과세 혜택도 동시에 폐지된다. 은행권 상품인 골드뱅킹은 내년부터 과세 대상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금융상품 중 유일하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dividual Savings Account·ISA)만 비과세 한도가 확대되다 보니 6개월 만에 가입자가 1만명에서 122만명으로 급증했다. 투자금액도 62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한 증권사 PB는 “고액자산가라고 하더라도 세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도 가입할 수 있는 절세 상품이 있다면 좋겠지만 정부가 모두 막아둔 상황에서 이들의 자산 현금화와 묻어두기를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