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2017년 악몽 재현하나…"규제→추락 닮은꼴" Vs "위상 달라져"
by방성훈 기자
2021.05.25 00:00:00
중국發 악재 닮았다…2018년 폭락 재현 우려
2017~2018년과 달라…기관 참여 등 위상 강화
제도권 내 투자자산 인식↑…“조정 후 더 오를 것”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암호화폐 대장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한 달 동안 50% 가까이 폭락하면서 광풍 후 급락장을 연출했던 2017~2018년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내리는 주요 원인이 강력한 규제 때문이라는 점에서 당시와 닮은 꼴이다. 반면 개인들만의 리그였던 당시와 달리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투자 환경이 달라졌다며 조정장을 거쳐 반등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현지시간) 중국발 악재로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자 2017~2018년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7년 비트코인 랠리를 촉발한 비트코인 선물의 시카고상품거래소(CME) 상장과 올해 미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상장, 그리고 중국의 규제 강화 역풍까지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올해 2만 9000달러 수준에서 거래를 시작한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중순 6만 5000달러에 근접해 고점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났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한국시간으로 24일 오후 6시 15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3만 6300달러 수준이다.
중국의 규제 강화가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중국 최고행정기구인 중국 국무원은 지난 21일 류허 중국 부총리 주재로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를 열고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 행위를 타격해 개인의 위험이 사회 전체 영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단호히 틀어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정부인 국무원 차원에서 비트코인 채굴 제한 원칙을 분명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암호화폐 거래를 막은데 이어 이젠 채굴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앞서 중국 인터넷금융협회, 은행업협회, 결제업무협회 등 3개 단체는 19일 공동성명을 통해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를 서로 교환하거나 암호화폐 거래를 촉진하는 중개 서비스 제공, 코인 등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거래 등 모든 행위는 형사상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세계 2위의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Huobi)가 중국 고객의 접속을 차단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고, 비트코인 가격 급락을 가속화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7년에도 암호 화폐 투기 광풍이 불자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하고 거래소를 폐쇄하는 등 강력한 거래 금지 규제를 가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같은해 12월 29일 1만 9666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이듬해 12월 말엔 84% 하락한 3233달러까지 떨어졌다.
세계 암호화폐 거래의 90%를 차지했었던 중국을 시작으로 향후 세계 각국이 암호화폐 규제를 강화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2017~2018년과는 거시 환경, 투자 여건, 인식 등이 크게 바뀌었다면서 장기 전망을 낙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비트코인의 지급결제 수단·기능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주도로 기관들이 비트코인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덕분이다.
미국에선 지난 3년여 동안 암호화폐에 대한 예치서비스, 가치평가, 기관용 트레이딩 툴, 대차 서비스 등 기관들을 위한 투자 여건이 마련됐다. 동시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불법적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미 사법당국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역외 거래소들을 줄줄이 기소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 아래 두고 관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거시 환경 또한 2017년과 차이가 있다. 미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정책,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제로금리 등으로 지난해부터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됐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2017~2018년엔 연준이 당시 2년간 기준금리를 0.5~0.75%에서 2.25~2.5%로 인상했고,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채권 투자가 더 각광을 받았다.
이처럼 변화한 환경 아래 헤지펀드나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비트코인을 장기 투자자산 또는 현금성 자산으로 취급·보유하고 있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은 암호화폐 관련 보고서 내놓고 있다. 사실상 정식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주식·채권·유가 등 다른 자산시장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관 투자자의 진입,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급증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암호화폐 투자 병행 등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영향력이 주식, 채권, 국제유가 등 전통적인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중국발 규제 소식이 전해진 뒤 미 나스닥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선물이 동반 하락하고 국제유가도 내림세를 보인 반면 미 국채와 일본 엔화 등 안전자산은 상승세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에 일부 기관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치를 여전히 높이 사고 있다. 미 암호화폐 전문 자산운용사 모건크릭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창립자 마크 유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비트코인은 컴퓨터 성능의 기술적 진화에 힘입어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가격도 5년 내 25만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놓은 아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캐시 우드 CEO는 심지어 투기적 거품이 사라지는 등 조정을 거치고 나면 비트코인 가격이 50만달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