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잃은 신용평가 개혁]④“투자자 기반 새 신평사 검토 필요”

by김도년 기자
2016.03.17 06:30:00

"발행사 의존한 수익 구조가 문제? 바꿀 방법 고민해야"
"투자자 지불 모델, 임의평가 허용도 함께 검토 필요"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신용평가사가 평가하는 기업의 신용등급이 시장의 믿음을 얻으려면 어떤 이해당사자에게도 치우침 없는 독립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채권 발행을 위해 신용등급 평가를 의뢰한 기업이 내는 수수료가 신평사의 주 수익원이다 보니 ‘갑’의 위치에 있는 발행기업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발행사 우위 구조에서 오는 신평사 독립성 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환평가제와 지정제 등 시장 경쟁 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재편하는 정책도 검토 대상에 오르지만, 발행기업의 수수료로 운영되는 근본적인 수익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관점에서의 대안들도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 대안이 투자자 지불 모델(Investor Pay Model)의 도입이다. 신평사가 발행기업 뿐만 아니라 신용등급을 활용하는 채권시장 투자자로부터도 정보 이용료를 받아 이해당사자 간의 균형을 추구해보자는 논리다. 언론사가 버는 수익을 기업 광고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유료 독자를 늘려나가는 방안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등급 평가에서 기업보다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등급 인플레이션과 반대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등급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낮은 신용등급을 받아 비싼 값에 자금을 조달해야 이득이기 때문이다. 또 특정 투자자가 이용료를 내고 신용등급 정보를 활용한다고 해도 이 정보는 시장 내에서 빠르게 공유되기 때문에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양한 부작용도 거론되지만 일단은 투자자 지불 모델로 운영되는 제4 신평사 설립을 허용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이미 서울신용평가와 에프엔가이드 등 제4 신평사 설립을 준비하는 곳들은 투자자 지불 모델을 활용해볼 계획이다. 투자자에게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새로운 신평사가 설립되면 기존 신평 3사와는 다른 관점에서 기업 신용 분석이 가능해져 시장내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 지불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본시장법으로 금지돼 있는 임의평가가 허용돼야 한다. 즉 발행기업이 의뢰하지 않아도 신평사가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투자자들의 의뢰로 신용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들 대안이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도입된 사례는 없기 때문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신용평가시장에서 투자자가 수수료를 지불하는 신평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는 거의 없어 도입 여부와 제도적 근거 등을 엄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임의평가제도의 경우 글로벌 신평사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에서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