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잃은 신용평가 개혁]①`기업부담` 신경쓰다 또 흐지부지

by김도년 기자
2016.03.10 06:30:00

금융위 공정시장과장, 홍보팀장이 겸직…'정부 관심에서 멀어져'
'신용평가 선진화 TF' 꾸린다지만, 작년까지 있던 TF는 흐지부지
제4신평사 정부 입장 '오리무중'…준비업체들 "'닭 쫓던 개' 신세"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독자신용등급 공시제도는)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경제에 미치는 대외변수가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어 기업의 신용등급이 명시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책을 지금 실시하는 게 적절한 지 고민이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의 임종룡 금융위원장 발언이다. 비단 독자신용등급 제도만이 아니라 신용평가정책 전반에 대한 임 위원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금융당국 수장의 이같은 철학은 정부 조직의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신용평가 관련 제도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산하 공정시장과 담당이다. 그러나 지난 1월4일 공정시장과장이 민간근무휴직제로 IBK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뒤 두 달 동안 사실상 공석이다. 금융위 정책홍보팀장이 관련 업무를 겸직하고 있지만, 한 나라의 회사채 시장과 신용평가, 회계, 공시 정책을 책임지는 관료가 대외 언론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신용평가업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들이 정부 관심사에서도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금융위는 조만간 학계와 시장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신용평가 선진화를 위한 전담팀(TF)을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1년 전까지도 신용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TF는 꾸려져 있었다. 이 TF에서 기업이 계열회사의 지원 없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독자신용등급 공시제도 등 다양한 정책 대안들을 논의했고 이 제도는 ‘자체 신용도 공시제도’란 이름으로 지난해 6월 중 시행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부실 기업이 시장에 드러나길 꺼리는 대기업그룹의 부담이 우선 고려된 것이다.

독자신용등급 공시제도가 좌초된 뒤 신용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TF도 더이상 소집되지 않았다. 발행기업 우위의 신용평가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순환평가제, 신평사 지정제 등과 수수료 체계 개선, 제4 신평사 도입 등 다양한 정책 대안 관련 논의들도 함께 사라졌다. 특히 제4 신평사 설립에 대해서는 22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에서도 ‘허용하자’는 의견이 다수였고 시장에서도 설립 준비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만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할 상황이 됐다. 물론 제4 신평사를 허용하겠다고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몸이 크면 사이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 시장이 형성되면 이에 맞게 방향성을 정해주는 게 정부 역할이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반응을 보이다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게 되면서 제4 신평사 준비업체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나마 이제라도 정부가 새로운 TF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장은 시간끌기용, 전시용 TF가 아니라 실제 시장 참여자들이 참여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생산적인 결과물이 발표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