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유정 기자
2012.05.03 08:00:00
[이데일리 김유정 기자] 모두가 팔아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심은 꽃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어루만지다보니 결심이 서지 않았다. 안 팔겠다고 했다. 또 다시 목을 조여 오는 채권단. 이제는 팔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봤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어느 것 하나 눈에 밟히지 않는 것이 없다. 망설이는 사이 자금난은 심화됐고, 감당할 수 없는 만기어음 도래 속에 뒤늦게 회사는 화의신청을 택하고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90년대 말 쌍방울과 쌍방울개발이 부도를 맞고 강한 애착을 보이던 무주리조트마저 넘겨준 사연이다. 15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말한다. 무주리조트만 조금 일찍 팔았더라도 쌍방울의 정상화가 가능했을 거라고 말이다.
`오너 리스크`라는 말은 여러 경우에 쓰인다. 어떤 오너는 폭력을 휘둘러 기업의 이미지를 한 순간 추락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오너는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한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송두리째 흔드는 `오너 리스크`도 있다. 오너의 지나친 사업 확장 욕심과 재무적 판단 오류 때문이다. 오너의 욕심이 화를 부른 기업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인수합병(M&A)은 자금 부담으로 이어져 기업의 숨통을 조여 온다.
올 초 미국프로야구(MLB) 팬들의 눈을 의심케 한 보도가 있었다. LA다저스 인수전에 이랜드그룹이 뛰어들었다는 소식이다. LA다저스가 한국 기업의 품에 안길지 야구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의 미국 MLB 데뷔 구단이기도 한 LA다저스는 1884년 창단 이래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6차례나 차지한 명문 구단이기에 야구팬들의 마음이 설레는 것도 당연했다.
이랜드의 인수 의도와 진정성에 의문을 품기는 시장뿐만 아니라 외신도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랜드가 피터 오말리 전 다저스 구단주 등과 구성한 `오말리 컨소시엄`을 배제한 채 매직 존슨이 참여하고 있는 투자단과 스탠 크롱크 NFL 세인트루이스 램스 구단주,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이 이끄는 투자단 등 3곳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예상대로 이랜드는 입찰에서 떨어졌고 LA다저스는 매직 존슨이 이끄는 투자단의 품에 안겼다.
이랜드의 LA다저스 인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크레딧업계는 이를 하나의 시그널로 받아들이며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이랜드는 인수목적 향후 시너지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은 재무적 판단을 쉽게 내린다는 인상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는 얘기다. 이랜드의 LA다저스 인수 시도 배경에 대해서는 설만 난무하다.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야구 사랑이 가져온 무리수라는 평가도 있고 미국 의류시장을 염두에 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랜드가 크레딧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뉴코아(6254억원)와 한국까르푸(1조7100억원)를 인수하면서부터다. 1995년 설악산켄싱턴호텔 인수를 시작으로 20여개 사를 인수했고, 뉴코아와 한국까르푸를 대부분 차입으로 마련한 돈으로 인수했다. 이는 재무부담을 급격히 키웠고 비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조와 갈등까지 더해지며 결국 2008년 한국까르푸를 다시 내놓았다.
이때만 해도 M&A에 크게 데인 이랜드의 행보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랜드가 홈에버를 매각키로 하면서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제 버릇 남 못주듯` 몸집불리기는 다시 시작됐다. 2010년 이탈리아 신발의류업체인 라리오, 벨페를 인수했고, 가방브랜드 만다리나덕도 품에 안았다. 명품브랜드 코치넬리와 록캐런오브스코틀랜드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줄줄히 인수했고, 미국 신발업체 CBI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엘칸토, 광주 밀리오레도 품에 안았다. 레저부문에서도 공격적 행보를 드러냈다. 2010년 C&우방랜드를 인수했고, PIC사이판과 팜스리조트도 사들였다.
IB업계와 크레딧업계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시장 관계자들은 "매물만 나왔다하면 앞뒤 안 가리고 찝적거린다"는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랜드의 반박 논리의 중심에는 중국사업의 유망함이 있다. 이랜드는 중국 의류 사업 순항으로 올해 중국 내에서 연매출 2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티니위니` 등 브랜드가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크레딧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실적이 제 아무리 좋아도 현금화가 되기 전엔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배당이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현금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실적 전망만 언제까지 믿어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차입금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통 M&A를 주도하는 이랜드리테일의 부채비율은 2007년 말 160.7%에서 2010년 말 199.6%, 2011년 6월 현재 202.7%까지 치솟았다. 2010년 동아백화점 양수와 강서백화점 출점투자, 신규점 오픈 등 투자 확대가 차입금 규모 증가로 이어진 탓이다. 차입금 의존도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2007년 말 42.6%였던 차입금의존도는 2009년 말 29.5%까지 떨어졌지만 2011년 6월 현재 다시 45.4%까지 올라섰다. ()
안나영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이랜드의 M&A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판
단된다"며 "이런 확장전략이 과도하게 외부차입에 의존해 이뤄진다면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룹의 주력사로서 이랜드리테
일이 이를 상당부분 짊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