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만나다]"FTA, 반감보다 먼저 경제득실 따져야"

by임일곤 기자
2011.12.08 10:30:00

유르겐 뵐러 한독상공회의소 소장 인터뷰
韓-EU FTA,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에 긍정적
"농가 체질개선해야..獨 경쟁력은 검소·근면성"

[대담= 이데일리 김윤경 국제부장· 정리= 임일곤 기자] "시장 규모가 작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큰 틀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외부에서 싼 가격의 제품을 들여올 경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미 대외무역이 흑자 구조라 개방으로 인한 위험부담도 적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독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유르겐 뵐러(61·) 소장은 한·유럽연합(EU) FTA를 지렛대 삼아 무역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뵐러 소장을 만난 날은 지난 7월 한·EU FTA가 발효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이자, 11월22일 국회에서 한-미 FTA가 강행처리된 이후 국론이 분열되는 등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시기였다. 
 



뵐러 소장은 정치적 이슈에 휩쓸리기보다 FTA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무역 흑자 규모도 큰 한국은 FTA를 통해 달러를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외환보유액도 늘게 돼 결국 환율 안정 등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주장이다. 

FTA를 통해 관세가 철폐되면서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 대기업 위주 업종은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이지만 농·축산 분야는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 아직 힘이 약한 국내 농축산 분야는 FTA 개방 이후 외국에서 물밀듯이 들여온 값싼 제품으로 고사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대해 뵐러 소장은 "대개 FTA를 반대하는 분야는 농축산"이라고 지적하면서 농가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농가는 규모를 키우고 전문적인 고부가가치의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주력해야할 때"라면서 "정부 차원에서 농가에 연금이나 노후 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FTA가 양국 경제를 이롭게 한다는 입장은 확고했다. 특히 독일은 EU 역내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크고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어 한국 기업은 FTA를 통해 기술력을 강화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독상공회의소의 회원사 수는 542개로 국내에 있는 상공회의소 가운데 규모로만 따지면 2위다. 독일 상공회의소는 주한 상공회의소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곳이며 주한 독일대사관의 경제 업무도 맡고 있다. 보통 상공회의소 소장들이 기업 최고경영자(CEO)직을 겸임하는 것과 달리 뵐러 소장은 상공회의소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자국 산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한국에선 독일산 자동차 외에도 자동차 주요 부품도 많이 수입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자국 명차에 대한 자랑을 쏟아냈다. 네 개의 링이 교차된 아우디 로고는 4개 회사가 합병한 것을 상징하며, 비행기 부품 생산업체로 출발한 BMW의 로고는 프로펠러를 형상화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목에선 눈이 반짝였다.
 
독일은 자동차와 기계, 화학, 에너지 분야 외에도 의류 등 소비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뵐러 소장은 특히 의류업체 아디다스와 푸마를 비롯해 휴고보스와 에스카다, 몽블랑 등이 독일 브랜드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뵐러 소장은 독일이 유럽연합의 회원국 중 가장 중요한 한국의 교역 및 투자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현재 EU의 대(對) 한국 수출 40%를 독일이 차지하는데 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을 합친 규모보다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 기아차 등 많은 한국 기업들이 독일을 유럽 본부의 거점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들은 최근에는 서독보다 동독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독이 서독보다 물가가 싸고 동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독일은 EU 국가들 가운데 가장 경제력이 튼튼한 나라다. 뵐러 소장은 유럽 전체가 `재정위기`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독일 경제가 유독 흔들리지 않고 있는 비결 중 하나는 검소한 소비 문화와 근면한 국민성이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독일인들은 그동안 임금 수준은 크게 오르지 않아 가계 지출면에서 깐깐해질 수 밖에 없고 합리적으로 지출을 해왔습니다. 결국 모든 가계 하나하나가 강해져야 나라 전체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매력적이고 좋은 상품이 많아 수출이 잘되기 때문에 소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높은 것입니다"
 


독일 내의 대표적 한국통으로 꼽히는 뵐러 소장은 1985년부터 3년간 한독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한 데 이어 2007년 소장으로 취임했다. 독일 튀빙겐대 법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한국 해양대학교에서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국제 비즈니스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인베스트코리아투자자문단(IKAC)과 외국인투자자문회의(FIAC)에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