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기름값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

by전설리 기자
2011.08.14 10:08:05

고유가 지속된 상반기, 정부 기름값 인하 압박에 골머리
유가 급락 우려되는 하반기에는 수익성 악화될까 걱정

[이데일리 전설리 기자] 상반기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기름값 인하를 단행, 실적에 직격탄을 맞은 정유업계가 하반기에는 유가가 급락할까 노심초사다. 유가가 급락하면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기름값이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인 형국이다.



최근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사태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국제유가도 추락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되면서 불과 1~2주 사이에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8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 인도분 가격은 85.38달러에 마감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가 급락이 2008년 폭락의 악몽을 떠올린다고 보도했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WTI는 단 5개월 만인 그 해 12월 30달러대로 폭락한 바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2008년과 상황이 비슷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유가가 폭락하면 제품가격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와 정제마진 축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구조상 유가 급락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원유 수송기간에 따른 시간차 때문이다. 주문계약을 체결하면 한 달 뒤에야 원유가 수송되는데 제품가격은 팔 때의 국제유가를 반영한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지난 2008년~2009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대한석유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유가가 사상 최고가를 찍은 2008년 정유사업 부문에서 사상 최대 수준인 2조633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정유 4사는 유가가 폭락한 2009년 185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첫 영업적자였다. 
 






2008년의 유가 롤러코스터 상황이 재연될 경우 정유업계는 상반기 기름값 할인에 이어 연달아 직격탄을 맞게 된다.

지난 4월7일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시행된 휘발유·경유 가격 리터(ℓ)당 100원 할인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등 이른바 `규제 리스크`로 정유업계는 2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수모를 겪었다. (관련기사☞ 정유사, 많이 팔았는데 실적은 `반토막`)

지난달 발표된 SK이노베이션(096770)의 2분기 영업이익(K-IFRS 연결 기준)은 4513억원으로 전분기대비 62.1% 감소했다. S-Oil(010950)의 2분기 영업이익은 62.7% 줄어든 2418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의 2분기 영업이익도 50% 가량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업은 유가의 등락에 따라 수익이 크게 달라져 고유가 상황에서 바짝 벌어둬야 하는데 이번에는 고유가 시기에 기름값 인하로 실적이 반토막 났으니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이투자증권의 이희철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석유소비 증가세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면 국내 정유업체의 실적이 예상치를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판매 시차에 따른 이익 감소와 기말 재고평가 등으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직 실제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국내 정유사들이 주로 들여오는 두바이유과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연동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은 WTI에 비해 낙폭이 작은 수준이다. 12일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102.28달러로 여전히 100달러선에 머물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경기침체 영향을 직접 받은 WTI와 브렌트유는 급락했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 경제가 탄탄한 모습을 보이면서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 하락폭은 작았다"며 "중국의 전력난과 3.11 일본 대지진 여파 등으로 아시아 역내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