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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전날 제안한 개헌 논의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실현돼 우리 정치가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개헌론을 띄워 정국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던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환영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개헌론에 대해 “옳은 말씀으로 생각하고 본인이 진정성을 갖고 했다고 평가한다”며 “사회가 통합해서 제대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대선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임기를 단축하고 87체제를 청산하기 위해 개헌과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말씀도 진정성이 엿보였다”며 “탄핵이 기각되어 조속한 개헌과 정치 개혁으로 87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반면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던진 개헌론에 냉소적이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개헌 운운하며 국민의 눈을 돌리려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야비한 술책은 통하지 않았다”며 “계엄 직후 이뤄진 2선 후퇴마저 저버리고서 개헌, 권력 이양 등 말장난으로 국민을 기만하려는 뻔뻔함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했다.
‘찻잔 속 태풍’ 그칠 가능성 높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위시한 당내 주류는 이전부터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었다. 당내 소수파인 비명계(비이재명계)에선 개헌에 전향적이지만 당내 여론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다. 비명계 대선주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나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 대표를 만나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답한 걸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던진 개헌론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회에서 헌법 개정안을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친명계(친이재명계)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계엄 직후 자진퇴진을 거부해 온 윤 대통령 태도를 볼 때 개헌 제안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 60일 이내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대선 정국 속에 개헌론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으로 국정 동력을 잃자 개헌을 제안, 정국 주도권을 되찾으려 시도했으나 국정농단 정황을 담은 최 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제대로 논의도 되기 전에 사장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지금으로선 윤 대통령 개헌 제안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상식 이하의 상상력을 보여줬다”며 “설사 탄핵이 기각된다고 하더라도 야당이 개헌에 동조하겠느냐”고 말했다.
헌재 최종진술에서 개헌론 꺼낸 尹
전날 윤 대통령은 자신의 탄핵심판 최종 진술에서 탄핵 기각을 전제로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정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하여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개헌에 미온적·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취임 후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개헌 얘기가 나오면 민생과 개혁 문제는 다 묻힐 것이다”, “국민의 뜻이 모아져야 가능하다”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개헌론을 꺼낸 건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커지고 있는 개헌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반면 국정 복귀 후 2차 계엄 등을 통해 집권 연장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려는 걸로 보인다. 헌법 학계에 따르면 개헌을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은 임기를 줄이는 건 가능할 수 있다. 개헌에 따른 임기 연장이나 중임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