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은 기념사에서 “해병대 장병 모두가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의 일체감과 탄탄한 팀웍으로 공지기동 해병대의 비전을 향해 힘차게 나가야 한다”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창군정신을 되새겨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호국충성 해병대가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8년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상륙작전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49년 4월 15일 초대사령관 신현준 중령을 비롯한 380명의 소수 병력으로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됐다. 창설 이듬 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는 장항·군산·이리 지구 전투를 시작으로 진동리 지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 및 수도 서울 탈환작전, 도솔산 지구 전투,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명성을 높이며 ‘귀신 잡는 해병’, ‘무적해병’의 애칭을 얻었다. 1965년 9월에는 청룡부대(2여단)를 창설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청룡부대의 해외파병은 국군 전투부대로서는 처음이었다. 파병 6년 4개월 동안 ‘짜빈동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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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0일에는 한미 해병부대 역량의 통합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를 창설했다. 이는 한국 해병대 부대와 지정된 미 해병대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 지원사령부에 머물러 있던 한국 해병대사령부가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의 일원이 돼 작전사령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에는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연평도 포격전’이 발발했다. 연평부대 해병들은 적의 포격에 맞서 추가도발 의지를 분쇄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불타는 포진지 속에서 대응사격을 준비하는 모습은 ‘상승불패 해병대’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 적에 대한 정보·감시자산·타격 수단이 강화된 별도의 작전사령부 필요성이 제기 됨에 따라 2011년 6월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됐다. 육·해·공군 전력을 운용하는 전군 유일의 합동작전사령부로서 해병대 주도 아래 합동 전력을 운용하며 전·평시 서북도서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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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해병대는 신형 상륙장갑차와 대형 상륙함, 공격헬기 등 핵심 전력을 확보하고 공지기동형으로 부대구조를 개편해 전면전 뿐 아니라 비군사적 안보위협까지 담당하는 국가안보의 핵심전력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