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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입찰은 일단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정부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이번 매각의 변수로 꼽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이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가 필요한 국내 기업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는 제도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해외로 매각·기술 이전 시 정부의 심사를 받아야 해 인수합병(M&A) 난이도가 크게 올라간다.
HPSP는 반도체 선단 공정에 필수인 고압수소어닐링(HPA)과 고압산화공정(HPO)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인텔, TSMC 등 글로벌 메모리·파운드리 1~4위 기업들도 주요 고객사로 확보했다. 고압수소어닐링 장비는 웨이퍼 결함을 줄이고 초미세공정에서 주로 쓰이기에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현재 HPSP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HPSP 제품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모두 활용하고 있는데다, 해외 매각이 성사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역시 HPSP 매각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우선협상대상자로 해외 사모펀드가 선정된다해도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20년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초고압 전력케이블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당시 예비입찰에 참여한 베인캐피탈은 기술 유출 우려가 불거지자 인수를 포기했다. 2016년 두산공작기계 역시 외국계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PE)의 인수가 무산된 후 MBK파트너스에 최종 인수됐다.
국가핵심기술 지정 여부를 두고 고려아연(010130)과 비슷한 이슈가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은 MBK·영풍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한 지난해 9월 산업부에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고, 두 달 뒤 해당 신청은 승인됐다. 고려아연 경영권이 MBK·영풍으로 넘어갈 경우 해외 자본으로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하려는 고려아연 측의 복안이었다.
IB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모펀드 입장에선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M&A 자체가 선호도가 낮아지게 된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해외 기술 유출 가능성을 우려해 핵심 기술로 지정해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