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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민의 동거동락] 친애하는 트럼프에게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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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대 기자I 2025.06.26 11:15:25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원하십니까? (上)

미 트럼프 대통령 대국민 연설 시청하는 시민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에 의한 평화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초강대국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아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130여명의 청교도(Pilgrim)들과 선원들이 1620년에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안에 정박했을 때 예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태생적으로도 크나큰 복을 받은 나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 이전에는 지구촌을 아우르는 초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존재할 뻔했던 적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이 이끄는 몽골 기마대는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정복했으나 이 거대한 몽골 제국은 불과 수십 년 후 와해하다시피 했습니다. 중국의 왕조들은 중원대륙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고, 유럽의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심지어 나치 독일의 제3 제국 등은 넓은 권역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영토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의 미국은 수십 년째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몇몇 나라를 제외한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거대한 함대는 세계 요충지에 주둔하고 있고, 미 육군과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그 지위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세력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 지금 산재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들은 역사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예는 2000년 전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 지위를 수백 년간 유지하며 ‘팍스 로마나’를 제창했던 고대 로마입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가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포용(Comprehensio)과 관용(Clementia)이었습니다.

필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익숙한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로마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지배인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이자 자유도시를 표방한 아테네마저 귀족-시민-외국인-노예라는 사회제도를 갖고 있었으며, 스파르타인들은 심지어 10%도 안 되는 순수혈통 스파르타 시민만 1계급으로 우대하고 참정권을 줬습니다.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국가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폐쇄적인 사회구조와 맞물려 그들의 영향권은 끝까지 발칸반도, 이오니아 지방, 시칠리아 등으로 국한되었습니다.

로마 사회는 꽤 유동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고대 사회였기에 귀족-시민-속주민-노예 라는 계급사회였지만, ‘해방노예’라는 제도가 존재했고 이 ‘해방노예’들의 자식들은 로마 시민권을 얻어 2세대 때는 로마 사회에 완벽하게 융화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로마가 이런 포용적인 사회를 일구는데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공화정 시대(기원전 509년)부터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내의 수많은 부족을 긴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통합해갔지만,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기보다 그들을 ‘라틴 동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상생을 꾀했습니다. 하지만 로마가 포에니 전쟁, 마케도니아 전쟁, 이베리아 전쟁 등과 같은 연이은 승전과 급격히 늘어난 강역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 내의 기존 ‘라틴 동맹시’들은 수도 로마와의 격차를 줄이기를 원했습니다. 이 문제를 개혁하려던 ‘그라쿠스 형제’를 로마 원로원은 ‘원로원 최종 권고’(Senatus Consultum Ultimum) 이라는, 일종의 계엄령을 통해 분쇄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로마는 한동안의 내전(동맹시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동맹시들을 잠재우고 난 이후엔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같은 인물들이 서로 패권을 두고 내전을 벌였습니다.

약 1세기에 걸친 혼란 이후 로마는 카이사르와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의 권력 하에 안정된 제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국은 피지배자들을 일방적으로 탄압하는 제국이 아니라, 로마의 세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어느 정도 대우해주는 열린 제국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이나 파르티아 (나중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같은 세력은 로마의 방어선인 ‘리메스’바깥에 두고 침탈을 허용하진 않았지만, 교역은 계속 이어갔고 이민자들 또한 막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국경은 여느 고대 국가의 국경과는 달리 ‘열린 국경’이었습니다. 21세기 들어서 국경에 아예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해버리는 미국과는 매우 다르게 말입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 서형민 피아니스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다문화와 관련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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