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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은 007프로젝트 하는데…연구개발 밀리면 韓 반도체 미래 없어”[섹터 애널리스트 뷰]

신하연 기자I 2025.02.18 16:00:31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인터뷰
“제품·섹터 내에서도 주가 차별화 심화 전망”
R&D 속도 둔화에 글로벌 시장 경쟁력 저하
소부장 생태계 육성·산업 근본적 변화 필요

[이데일리 신하연 기자] 올해도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기업 위주로 주가 상승세를 보일 전망입니다. 이 흐름에서 한 번 소외되면 주가 약세가 불가피 합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5년 경력의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글로벌 반도체 섹터 내 주가 차별화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해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주가는 100% 이상 올랐지만, 메모리 시장의 성장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32% 하락했다”며 “D램 전체적으로는 부진해도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성장한 것처럼, 같은 제품이나 시장 내에서도 극과 극으로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도 AI가 성장 동력…韓 반도체 시장 매력은

AI 반도체 시장의 변화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그는 “딥시크의 등장은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단순히 GPU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맞춤형 반도체(ASIC), 클라우드 연계 기술 등 소프트웨어적으로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도 AI 특화 반도체가 시장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 메타가 인수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퓨리오사AI도 데이터센터 서버용 AI 추론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를 개발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스타트업이다.

결국 국내 반도체 업체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센터장은 “브로드컴은 반도체 설계뿐 아니라 네트워크, 보안, 클라우드까지 확장하며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반면 여전히 제조업 마인드 중심인 국내 업체들은 여전히 소프트웨어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며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 약 17~18%를 차지하는 2위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착시효과에 가깝다”며 “미국 반도체협회(SIA)의 기준은 최종 제품 기준이기 때문에, TSMC와 같은 파운드리 매출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을 고려해 국가별 반도체 매출액을 산출한 결과 대만(22%)이 한국(12%)보다 더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실제 기업 가치(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더 낮아진다. 그는 “매출액이 아닌 시가총액 기준으로 반도체 점유율을 계산하면, 미국이 68% 수준인데 반해 한국은 4%에 불과하다”며 “심지어 중국도 8%로 한국을 앞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매출 비중에 비해 작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평가 위해선 정책 지원 절실…“52시간제 예외·소부장 육성 필요”

이 센터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 중 하나로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연구개발(R&D) 속도 저하를 꼽았다. 그는 “중국은 과거 ‘996 프로젝트(9시부터 9시까지 주6일)’에서 최근 ‘007 프로젝트(0시부터 0시까지 주7일)’로 전환해 연중무휴로 반도체 R&D를 진행하고, TSMC도 ‘나이트 호크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개발 인력들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하며 24시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반도체 업계에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White Collar Exemption)’를 적용해 엔비디아 등 주요 기업들이 주 80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지금 반도체 시장은 기술 선점이 가장 중요한데, 연구개발 속도에서 밀리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단순한 근무시간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연한 연구개발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성장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종의 주가 상승세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지난해 전체 반도체 시장이 약 20% 성장했는데, 올해는 10% 미만으로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이 둔화되며 D램과 낸드플래시가 저조한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고, 주가가 재평가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 센터장의 제언이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밸류체인 생태계 자체가 허약한 편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주52시간제 예외를 비롯한 연구개발 인력 확보 지원, 소부장 기업 육성 등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삼성전자가 D램 세계 1위에 올랐던 1992년,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선언하며 혁신을 강조했다”며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그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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