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퇴색-그랑빨레''(2007)
흑백사진에 회화적 기법 덧입혀
세월의 흔적처럼 퇴색시킨 작업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 향해
무수한 점을 찍어 ''존재'' 담아온
20년 여정 거스른 시작점인 작품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는 풍경이다. 아니 알 수 없는 풍경이다. 사실 둘 다 맞다. 세상에 있는 풍경을 세상에 없는 풍경으로 바꿔버렸으니까.
작가 이은주(58)의 작업이 바로 그거다. 사진 이미지에 회화적 기법을 덧입혀 ‘있지만 없는’ 풍경을 만드는 일. 하지만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작가의 작업은 ‘시간을 멈춰 세우는 일’이니까.
 | 이은주 ‘퇴색-그랑빨레’(2007 사진=영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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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고비로 실험을 무기로 한결같이 그래왔더랬다. 처음에는 한 컷 흑백사진을 화폭에 올려 물감을 얹고 지워갔다. 퇴색하는 시간에 엉킨 기억의 잔상을 붙들고자 했던 거다. 이 시절을 두고 작가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한 첫 장면이자 역사와 개인의 궤적이 만나는 접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현대도시 이미지를 품은 전통 산수화를 꺼내놨고, 바로 지금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전경에 무수한 점을 찍어 시간을 희석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덧 ‘점으로 존재를 담는 예술가’가 된 작가는 이제 사계절 24절기를 점으로 꾹꾹 누르며 인생의 절기를 되감는 중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란다. 이 긴 여정에 작가가 쥐고 있는 단 하나가 있다면 말이다. ‘퇴색-그랑빨레’(Grand Palais·2007)는 얼추 20년을 거스른 그 시작점이다.
6월 1일까지 경기 광주시 청석로 영은미술관서 여는 개인전 ‘찰나-시간의 궤적을 따라서’에서 볼 수 있다. 한 걸음씩 떼어온 작가의 지난한 작품세계를 한눈에 펼쳤다. 캔버스에 혼합재료. 100×81㎝. 영은미술관 제공.
 | 이은주 ‘생드니 대로’(Boulevard Saint-Denis,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80×80㎝(사진=영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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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2020 입하’(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91×117㎝(사진=영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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